[한국서 살아보니]이노우에 아스코/'예의상 빈말' 한국도 많아

  • 입력 2003년 12월 12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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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은 하는 말과 속마음이 다르다면서요?”

한국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그 한 예로 일본 사람들이 이사 갔을 때 보내는 안내엽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런 엽서에는 보통 “우리는 ○○에 이사 왔습니다. 한번 놀러오세요”라고 쓰여 있다. 한 한국인이 그 말을 믿고 찾아갔더니 일본인이 ‘왜 갑자기 왔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더라는 거다. “선물도 사서 일부러 찾아갔는데 결국 서운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역시 일본 사람은 속마음과 말하는 것이 같지 않으니 조심해야 한다.” 대충 이런 이야기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이사를 하면 안내엽서를 보낸다. 그 엽서는 앞으로 연락할 필요가 생길 수 있는 모든 사람들한테 빠짐없이 보낸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안내엽서일 뿐이고 거기 쓰인 “한번 놀러오세요”라는 말도 인사말에 불과하다.

일본에는 집들이가 없다. 이사를 한 사람에게 비누나 휴지 같은 선물을 사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사했으니 비누나 사가지고 가서 놀자’는 한국인의 아름다운 마음을 일본인이 이해할 가능성은 아주 적은 것이다.

이 엽서 사건 이야기는 한국에 오기 전 여러 명의 한국인에게서 들어 속으로 ‘한국인들은 말과 행동이 진짜 일치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다.

한국에서도 형식적으로 하는 말들이 많다. 한국에선 “내일 만나자”고 하면 진짜 만나자는 것이지만 “언제 한번 만나자”고 하면 그냥 인사말로 생각하는 편이 낫다. 회사를 퇴직할 때 “자주 놀러오세요”라는 인사말도 그냥 믿어선 안 된다. “맛있는 거 사준다”는 말도 그렇다. 한번은 “맛있는 거 사줄 테니 아침을 굶고 오라”는 말만 믿고 진짜 아침도 거르고 찾아갔다가 냉면 한 그릇만 얻어먹은 적도 있다. 회의시간에 상사가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했을 때는 어떤가. 당신이라면 의견을 솔직히 말할 것인가. 이런 경우에 말을 가려야 하는 경향은 일본보다 한국 쪽이 훨씬 더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사람은 속마음과 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한국에도 일본에도 진심으로 하는 말이 있고 형식적으로 또는 예의상 하는 말이 있는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문화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한국인인 당신이 일본에 가서 살다가 아는 사람에게서 이사 안내엽서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때는 그 엽서를 보내준 사람이 평소 진짜 마음이 통하는 친구인지 생각해 보라. 답이 ‘그렇다’이면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에 집들이라고 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답니다. 짐 정리가 다 될 무렵에 한번 집으로 찾아가도 돼요?”라고. 그러면 그 일본인 친구도 한국의 풍습을 하나 알게 되고, 한국인인 당신도 일본인에 대한 불행한 오해를 하나 쌓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약력 ▼

1956년 일본 생. 92년 연세대 어학당에서 연수한 뒤 99년 다시 한국을 찾아 지금까지 한 일본어 학원에서 일하고 있다. 2002년부터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한국어교육을 전공 중이다. 올해 제7회 ‘서울이야기 시·수필 공모전’의 수필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노우에 아스코 고려대 교육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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