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재의 영화이야기]공든 탑이 무너지랴

  • 입력 2002년 1월 3일 18시 28분


지난 연말 망년회 자리였다. 난데없이 ‘쥐띠 삼형제’가 화제였다.

“쥐띠 삼형제가 있대∼요. 이웃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소문난 재주꾼이래요. 아, 그런데 그 형제들이 모처럼 맘 먹고 힘을 합쳤대요.”

도입부를 멍하게 듣고 있는 데 가만가만 이게 바로 영화 ‘화산고’ 얘기였다. 결론은 영화계에서 내노라하는 삼형제가 뭉쳤는데 ‘그래도 흥행이 안되면 모두 물에 빠져 죽으라는 것’이었다. 삼형제는 제작자인 ‘싸이더스’의 차아무개, 배급을 맡은 ‘시네마서비스’의 강우석 감독, 연출자인 김태균 감독이었다. 세 사람은 모두 60년생, 쥐띠 동갑이다.

아뿔싸. 술기운이 확 달아났다. 결국 한국 영화계를 주도한다고 자부해온 세 사람이 손을 잡았는데도 실패한다면 정말 한심하다는 것 아닌가.

지난해 개봉된 ‘화산고’의 관객 수는 1일 기준으로 전국 166만명이다. 적은 수는 아니지만 솔직히 기대에 못미쳤다.

나머지 ‘형제’들은 몰라도, 내게 2000년은 몹시 추웠다. ‘무사’ ‘봄날은 간다’가 선전했고 수익도 나쁘진 않았지만 아쉬움이 많았다. 그 만큼 생각도 많았다. 누구 말처럼 삼형제가 손잡고는 아니라도 나만이라도 물에 풍덩 빠질까. 정말 그 정도는 아니라도 “에이, 정말 안되면 이민가 슈퍼마켓이라도 차린다”는 생각까지 했다. 공들인 작품이 시장에서 싸늘한 반응을 얻을 때면 십수년간 영화판에서 쌓은 ‘내공’이 팍 깨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고도 내가 영화 제작자이고 전문가인가. 좀 거친 표현이지만 쉽게 만들고도 전국 300만, 400만명을 쉽게 넘기는 영화도 많은 데 말이다.

사실 ‘나두 맘 먹고 오락영화 만들어 봐’라고 했다가 ‘그래도 영화의 작품성을, 완성도를 놓치진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가 또 바뀌고 했다. 이전에 사무실에 ‘반성중’이라고 쓴 팻말을 걸어놓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올해에는 몇 개 더 붙여놓을까.

결론은 이렇다. 난 완성도도, 관객도 포기할 수 없는 제작자라는 것이다. 난 아직 이민보다는 영화판에서 더 욕을 먹고 싶다. 차승재(싸이더스 대표·tcha@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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