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뷔시절]조형기, 악역 연기후 동네아주머니에 곤욕

입력 2002-01-02 18:18수정 2009-09-18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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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영화배우(조항)였던 탓에 우리집은 어렸을 때부터 예술인들로 북적댔다. 장민호 이해랑 이진섭 등 연극계의 거장들이 아버지와 함께 술을 드시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칸초네와 샹송을 불렀다.

초등학교 4년때 영화 제작에 실패한 아버지가 홧병으로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어머니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보성고 재학시절 친구 5명과 영등포에 있는 음악학원을 다니며 그룹을 결성했다. 나중에는 모대학 경영학과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6개월간 밤무대 밴드에서 일했지만 왠지 싫증이 나서 그만뒀다. 그 뒤로 보험회사에 영업사원으로 취직해 꽤 실적을 올렸으나 그것도 3개월 뒤에 그만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막연히 영화배우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던 나는 1982년 MBC 공채 탤런트 시험에 합격하면서 연기자로 나섰다. 단역을 전전하다 87년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정자 남편’으로 출연하면서 악역의 이미지가 굳혀졌다. 당시 길거리를 다니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저런 나쁜 놈”이라며 마구 달려들기도 했다.

93년 ‘엄마의 바다’에서 무능한 공처가역으로 악역의 이미지는 한풀 꺾였다. 팬들이 “남자 망신은 다 시키고 다닌다”고 시비를 걸만큼 변신은 성공이었다. 당시 나는 부드러운 말투와 맹한 표정을 짓느라 한동안 고생했다.

내 이미지가 코믹 캐릭터로 급선회한 것은 94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콩글리시’ 팝송을 부르면서부터다. 노래 앞부분의 ‘좌우지 장지지…’는 그 뒤로 유행어가 됐고 나는 각종 코미디 프로에 불려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해 6월에는 데뷔 12년만에 처음으로 CF를 찍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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