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4시]장애인의 '승하차 곡예'

  • 입력 2001년 1월 29일 18시 45분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지체장애인 안인수씨(48·서울 구로구 구로동)를 두고 주위에서는 “지하철 정보를 꿰고 있다”고 말한다. 어느 역, 몇 번 출구에 어떤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는지 그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안씨의 지하철 나들이는 엄청나게 신경을 써야 하는 피곤한 여정. 그는 “다른 사람보다 저승이 좀 가깝지”라고 섬뜩한 농담을 던진다. 광화문우체국에 볼 일이 있는 안씨. 5호선 광화문역에는 나름대로 장애인 편의시설이 돼 있어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그렇지 않을 땐 목적지 앞뒤의 3개 역까지 고려해야 한다.

▼낡은 '체어매트'에 목숨 걸어▼

집 근처 신도림역.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물론 없고 계단 벽면에 휠체어리프트도 없다. 인터폰으로 역무원을 불러 도입한 지 10년이 넘은 ‘체어매트(이동식 휠체어리프트)’를 요청한다. 가로 세로 1m 남짓한 발판에 무한궤도가 달린 기계를 역무원 2명이 끌고 온다. 안씨를 태우고 안전벨트로 묶은 뒤 끝까지 내려가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0분. 여기서 다시 휠체어리프트를 타고 승강장까지 내려간다. 혼자서 작동시킬 수 있어 마음은 편하지만 고장이 잦다. 내려가는 도중에 멈춰서 꼼짝달싹 못한 적도 있다.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의 넓은 틈도 또 하나의 장애물. 전동식이 아닌 보통 휠체어로는 감히 올라탈 생각을 못하게 하는 역이 수두룩하다. 영등포구청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탄다. 리프트를 3번 바꿔 타고서야 승강장에 도달한다.

▼"성한사람 작은관심 큰 도움"▼

광화문역에서 내린다. 세종문화회관 뒤 8번 출구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할까, 아니면 교보문고 방향의 리프트를 탈까. 엘리베이터가 편하긴 하지만 며칠 전 사람이 죽었던 사고가 생각난다. 또 그쪽으로 나와봤자 광화문우체국까지 가는 길이 멀고 험하다. 교보문고 쪽을 택한다.

겨우 광화문우체국에 도착. 오늘은 역무원이 제때 나타났고 리프트도 고장나지 않아 무난했던 편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라도 어그러지면 약속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안씨가 생각하기에 지금 우리의 지하철은 장애인을 위한 최선의 교통 수단이 아니다. 시설과 서비스는 물론이고 우선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이 만만치 않기 때문. 하지만 선진국처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맞춰 오는 전용버스가 있는 것도 아닌 현실에선 지하철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모든 역에 설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진 그런 엘리베이터가 있는 역이 서울 시내에 71개뿐이다.

안씨의 마지막 바람은 ‘비장애인들의 작은 도움’. 전동차에 올라 탈 때, 리프트 없는 계단을 올라갈 때 이들이 조금만 신경 써 준다면 훨씬 쉽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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