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24시]지하철 승객 꼴불견 백태

  • 입력 2001년 1월 21일 16시 39분


모르는 사람끼리 비좁은 전동차 안에서 부대낄 땐 거슬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다수 사람이 공감하는 ‘꼴불견’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당신이 혹시 이런 꼴불견의 장본인이 될 때는 없는가?

▽“신문은 당신만 보나”〓 형씨, 오늘 신문에 볼 것 많구먼. 게다가 양쪽 면을 한꺼번에 볼 수 있으니 한 눈에 확 들어오네. 고맙긴 한데, 그거 좀 접어서 볼 수 없나? 아까부터 자네 왼팔이 자꾸 내 눈앞에 어른거려서 말이야.

▽“덕분에 노래 다 외웠어”〓 학생, 정말 고마워. 내가 노래방만 가면 기를 못 편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학생 헤드폰에서 새어나오는 조성모 신곡을 30분 들었더니 다 외웠어. 소리를 조금만 키우면 옆 객차까지 들리겠던데?

▽“좀 내릴게요”〓 아줌마, 저희 내리고 싶어요. 지하철이 아무리 따뜻하고 편해도 마냥 타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조금이라도 빨리 타서 자리 잡으려는 거 알고는 있어요. 하지만 지금 못내리면 저는 또 지각이에요.

▽“당신의 사생활 듣고 싶지 않아”〓 젊은이, 어제 술을 많이 먹어 속이 쓰리다고? 그 못된 놈이 술값도 안내고 먼저 가 열 받았다고? 왜 자네 사생활에 관심이 많으냐고? 이 사람아, 휴대전화에 대고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니 누군들 모르겠나.

▽“쫙 벌린 다리가 흉하네요”〓 아저씨, 그 다리 조금만 오므려주시면 안되나요? 7명 앉는 좌석에 5명밖에 앉지 않았는데 왜 제가 못 앉을까요? 옆에 다른 사람 앉으면 몹시 불편한가요? 다리도 별로 길지 않은데….

▽“질투날 정도야, 당신들 사랑”〓 언니 오빠, 그렇게 서로 쓰다듬으면 기분 좋아요? 어마! 뽀뽀도 하네요. 제 손을 잡아끄는 우리 엄마 혀 차는 소리 안 들려요? 옆자리 오빠는 부러운 듯 쳐다보네요 호호.

▽“떠나는 전동차가 그리도 아쉬운가”〓 승객 여러분, 닫히는 전동차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지 마십시오. 손 발 가방 우산, 심지어 머리까지 문 사이로 들이미시는데 그러다 큰일납니다. 다음 차 곧 옵니다. 조금만 참아 주세요.

▽“자꾸 잠이 와?”〓너희들 노인만 보면 잠이 오지? 이상하다 그지? 역에 설 때마다 슬금슬금 실눈을 뜨지? 이상하다 그지? 그렇게 자다가도 내릴 때만 되면 발딱 일어나는 거, 이상하다 그지?

억울한 젊은이들도 있을 것이다. 노약자석도 아닌 곳에서 진짜 곤히 자고 있는데 툭툭 치며 자리를 양보하라는 어르신 때문에 혼났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인터넷에 오른다.

그러나 ‘노약자에 대한 예의’와 ‘앉아 갈 권리’ 사이의 갈등은 사실 요령부득의 논란인지도 모른다. 하루 550만명이 이용하는 지하철, 남을 배려하는 작은 마음과 여유만 있으면 이 모든 것이 아예 생기지도 않을 문제인 것을.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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