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4시]지하철 수사대 만나고 싶다면…

입력 2001-01-15 18:59수정 2009-09-2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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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에서 일하며 음지를 맴돈다.’ 옛 안기부의 좌우명이 아니다. 이는 지하철수사대의 모토.

서울 지하철의 하루 승객 550만명의 안전을 책임지는 지하철수사대. 그들을 만나고 싶다면 이렇게 행동하라. 먼저 승객이 가장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 환승역 한 곳을 정한다. 최적의 장소는 동대문운동장역, 교대역, 건대입구역 등이다.

일단 승강장에 선다. 세련된 코트에 값비싼 손가방을 들고 있어도 좋다. 그리고 눈초리를 세우고 오가는 승객들을 자세히 관찰한다. 가방을 뒤로 멘 여성들을 주의깊게 보면 더욱 좋다.

전동차가 들어오면 절대 금방 타지 말 것. 4, 5대는 그냥 보낸다. 한 곳에 머무르기보다 기웃거리며 조금 오락가락하는 게 더 좋다. 15분 정도 이렇게 하면 당신이 지하철수사대와 만날 확률은 조금씩 높아진다. 이제 전동차에 올라타자. 틀림없이 같은 전동차에 수사대원도 탈 것이다. 당신이 앞에 선 여자의 몸에 밀착하거나 그의 핸드백에 손을 대보려는 순간 어김없이 당신 손을 붙잡는 또 다른 손이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면 수사대원을 볼 확률은 좀 낮아진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말자. 두세 정거장 뒤 하차해 반대방향 노선을 잡아타라. “소매치기나 성추행범은 목적 달성에 실패하면 반드시 처음 장소로 돌아온다”고 베테랑 수사관 박현수 경사(35·제1지구대 소속)는 조언한다.

원래 자리에서 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좀더 적극적으로 한 여성의 가방에 손을 대보라. 그때, 당신은 고대하던 지하철수사대와 거의 틀림없이 만날 수 있다.

신분증을 보여달라면 없다고 잡아떼라. 그러면 2인1조의 수사대원이 양옆에서 팔짱을 끼고 지구대로 데려갈 것이다. 이렇게 된 바에야 사무실까지 보는 것도 좋다. 한강 이북이라면 종로3가역에 1지구대, 이남이라면 이수역에 2지구대가 있다.

지구대 사무실은 환기도 제대로 안되고 철로와 15m밖에 떨어지지 않아 소음에도 무방비. 그곳에서 당신이 제대로 된 신분증을 보여준다면 약간의 욕을 먹고 훈방될 것이다. 그러나 혹시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않다면 ‘소매치기 미수’ 또는 ‘성추행 미수’로 법의 심판대에 설 수도 있다. 지하철 범죄는 대개 이 두 가지 유형이다. 그리고 절대 놀라지 말라. 서울 지하철수사대원은 218명뿐이지만 당신이 위와 같이 행동할 때 언제든 그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또 형사반 경력 5년 이상인 그들은 이미 ‘범죄 포착 9단’의 경지라는 것을.

마지막 얘기 하나. 승강장 또는 전동차 안에서 매서운 눈초리로 당신을 보호하는 이들의 바람은 전혀 거창하지 않다. 햇빛 비치는 역 출구로 나가 담배 한 개비 맛있게 태우는 것. 그뿐이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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