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조연]조재현 "알고보면 의리의 사나이죠"

입력 2000-04-20 19:56수정 2009-09-2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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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개봉되는 영화 ‘섬’. 영화는 때로 섬뜩함을 넘어 잔인한 느낌도 들지만 도입부에서는 뜻밖에 웃음이 터져나온다.

스태프를 소개하는 자막 가운데 난데없는 ‘의리출연 조재현’이라니? 특별출연, 우정출연, 찬조출연은 들어봤어도 생소하고 엉뚱한 단어다. 조재현(35)과 김기덕 감독은 96년 ‘악어’, 97년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로 만났다. 조재현은 “둘 사이도 그렇고, 뭔가 상투적인 표현이 싫었는데 그게 의리출연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섬’에서 맡은 역할은 티켓 다방의 포주. 입만 벌리면 욕설에 손찌검을 하며 티켓 다방의 여종업원을 달달 들볶다 결국 ‘고기밥’ 신세가 되는 그 사람이다. ‘Yankees’라는 영어가 새겨진 빨간 잠바는 여자 등쳐먹는 치사한 인생을 포장하기에 제 격이다. 그가 이태원을 뒤지면서 손수 구한 의상이다.

어쩐지 조재현은 이제는 옛말이 된 듯한 ‘의리’라는 말이 어울리는 연기자다. 91년 독립영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시작으로 주로 제작비 5억원 미만의 저예산영화에 출연해 왔다. 밝히지는 않지만 개런티가 많을 리 없다.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들의 제작비가 넉넉하겠습니까? 10만원 이하의 소품이나 의상은 그냥 내손으로 해결한다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찍습니다.”

97년 전수일 감독의 ‘내 안에 부는 바람’을 촬영할 때는 자기 돈을 들여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 영화를 찍기도 했다.

그는 작품의 기획 단계에서 캐스팅 후보를 놓고 저울질하는 ‘책상 노미네이트’에서 가장 이름이 많이 오르내리는 연기자다.

“‘조재현은 어때…’라며 설왕설래하다 ‘주연감’은 아니라며 결국 떨어뜨리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저도 그동안 특이하고 개성 강한 인물을 많이 찾았습니다. 배역이 마음에 들면 돈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그런 면에서 그는 돈과 인기로 상징되는 스타의 길보다는 ‘배우의 길’을 걷는 연기자일 것이다.

95년 ‘영원한 제국’을 빼면 대부분 밑바닥 인생이면서도, 다시 그들을 착취하는 ‘하이에나’형 인물들을 전전했다. ‘악어’에서는 시체를 숨겨놓고 가족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한강다리 밑 건달이었고,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는 북한에서 귀순한 친구의 돈을 등쳐먹는 ‘쓰레기 인생’이었다. 최근 개봉 중인 ‘인터뷰’에서는 카페 사장으로 돈사정은 나아졌지만 영화감독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는 역시 건달이다.

TV라고 사정이 달라질 건 없다.

현재 출연 중인 KBS1 ‘학교Ⅱ’(일 오후7·10)의 교사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수 오후7·35)의 농촌 청년 역을 빼면 반듯한 인물은 그의 몫이 아니다.

“‘학교’의 교사역에는 초등학교 2학년인 딸 혜정이의 소망이 들어 있습니다. ‘맨날 나쁘게 나오는데. 아빠, 이번엔 선생님 하세요’라고 하더군요.”

김기덕 감독은 “조재현은 한 마디로 에너지가 넘치고 다양한 캐릭터가 숨어 있는 배우”라고 말한다.

“무슨 역을 맡겨도 100점 만점에 70점은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완성된 배우’는 아닙니다. 인기도 좋지만, 연기는 더 소중하다는 데뷔 시절의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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