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리포트]미니신도시 대중교통 너무 적다

  • 입력 2000년 2월 7일 19시 48분


“아침마다 입석까지 꽉 찬 버스를 여러대 그냥 보내고 간신히 탄 좌석버스에 서서 서울까지 가다 보면 처량한 생각이 듭니다. 행정당국이 택지개발을 해 아파트만 무더기로 지어놓고 교통 등 생활기반시설은 전혀 신경쓰지 않으니까요.”

경기 용인시 수지읍 수지1지구 H아파트에 사는 이모씨(36)는 매일 ‘출근 전쟁’을 겪는다. 수지지구와 직장이 있는 서울 강북을 오가는 버스는 5500번 좌석버스 뿐인데 최근 승객이 부쩍 늘어 오전 7시 이전에 집을 나서도 빈 좌석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힘들기 때문.

택지개발을 통해 수도권 곳곳에 새로 조성된 미니 신도시 주민들 상당수가 대중 교통수단이 너무 부족해 고통받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택지개발 허가를 내주면서 늘어나는 인구를 소화할 대중교통수단을 미리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

현재 1만여명이 입주해 살고 있는 김포시 풍무동 풍무지구 주민들은 출퇴근 시간에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느라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민들 대부분이 서울과 인천으로 출퇴근하고 있지만 풍무지구와 서울, 인천을 오가는 버스는 69, 81, 86번 등 3개 노선 뿐이기 때문이다.

회사원 손모씨(35·여)는 “앞으로 풍무지구 옆 48번 국도를 따라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계속 건설될 것으로 아는데 행정당국의 교통정책이 이런 식이라면 머지않아 교통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시흥시 정왕동 시화지구는 인구가 11만명이나 되지만 서울을 오가는 버스는 좌석버스 320번 등 영등포까지 가는 2개 노선 32대 뿐이다. 서울 지하철 4호선 연장구간에 정왕역 등 3개 지하철역이 7월에 생길 예정이지만 안산시와 군포시를 경유해 서울까지 1시간 이상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수원 영통지구에 입주한 주부 김모씨(42)는 “남편이 자가용 이외에는 출근할 방법이 없어 항상 차를 갖고 나가기 때문에 나는 낮에 볼일이 있어도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어 외출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정은 고양 구리시 등에 최근 조성된 대부분의 미니신도시가 마찬가지다. 게다가 신도시 내부를 운행하는 시내버스나 마을버스 노선이 아예 하나도 없는 곳이 대부분이고 택시도 전철역 주변에만 몰려 있어 타기 힘들다.

지난해 말 수원 정자지구에 입주한 윤재근씨(32)는 “‘울면 마지못해 사탕을 하나 주는 식’의 대책이 아니라 공무원들이 먼저 나서서 주민들의 불편을 예상하고 대책을 세워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기홍·이명건기자>sechepa@donga.com

▼생활기반시설 왜 이러나▼

수도권 미니신도시들의 교통 등 생활기반시설 확충 과정은 항상 ‘선(先)불편-후(後)대책’ 방식이었다.

즉 주민들의 불만이 들끓어 비등점에 올라야 관할 행정기관이 ‘뒷북치기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경기 용인시 수지지구의 경우 1지구 입주민들이 5년이 넘게 불편을 겪고 나서야 대중교통수단이 확충돼 현재 11개 노선버스가 서울 강남을 오가고 있다.

용인시 관계자는 “서울시가 인근 도시의 버스가 서울 도심에 들어오면 교통체증이 심해진다는 이유로 노선 신설이나 연장을 허가해 주지 않아 어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시흥시 관계자는 “미니신도시의 경우 도시 기능이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유동인구가 부족해 버스업자들이 수지가 안 맞는다며 운행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교통문화운동본부 박용훈(朴用薰)대표는 “만약 업자들이 운행을 꺼리는 구간이라면 공영버스를 투입해 주민 불편을 줄이고 서울시도 미니신도시 주민들이 서울 인구 분산정책에 따라 이주한 다같은 수도권 주민이라는 점을 감안해 적극적인 대책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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