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키드/伊 유치원교육]현장학습 중시

입력 1999-08-16 18:39수정 2009-09-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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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부 레지오 에밀리아시(市)의 디애나유치원. 개학 첫날인 지난해 9월초 5세반의 첫시간은 방학 동안 겪은 일에 대한 아이들의 발표로 시작됐다. 교사 굴리아노타리는 해변가에서 지낸 경험이나 재미난 놀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리라 예상했다.

“항구에 갔었어. 가게가 줄지어 있는 좁고 긴 거리를 지나갔는데 사람들로 가득차 아무것도 볼 수 없고 군중들의 팔 다리 머리만 보였어.”(가브리엘)

굴리아는 ‘군중’이란 뜻밖의 단어에 주목하고 “애들아, ‘군중’이란 말이 무엇일까?”라고 물었다.

“사람들이 가득한 주머니야.”(스테파노)

“많은 사람들이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 거야.”(니콜라)

“공휴일에 몹시 복잡한 장소 같은 것이야.”(클라라·여)

아이들은 군중이란 단어를 다양하게 해석했고 굴리아는 이 단어가 가진 ‘잠재력’을 발견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군중에 대해 집단 토의를 하게 한 뒤 자신의 생각을 그리게 했다. 주머니나 장소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말로 표현한 내용과는 많은 차이가 나타난 것.

◆앞만 보는 사람들◆

이틀 뒤. 굴리아는 아이들이 이전에 그린 그림을 나눠주고 토론한 내용도 녹음기를 통해 들려줬다. 그리고 다시 한번 토론을 시킨 뒤 그림을 그리고 설명하게 했다. 이번 그림들은 훨씬 더 정교하고 자세했다.

테레사는 군중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 “군중은 왼쪽, 오른쪽, 앞으로 가고 무엇인가를 잊어버렸을 때 뒤로 돌아가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테레사는 곧 혼란에 빠졌다. 그림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앞만 보고 있었기 때문. 테레사는 “그림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 아무 것도 잊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했다.

페더리코의 그림에도 문제가 있었다. 옆모습을 한 개를 빼고 모든 사람이 앞을 보고 있었다. 그는 “개의 옆모습만 그릴 줄 안다”고 고백했다. 아바노는 “만약 내가 그린 대로 모든 사람들이 앞을 보고 걷는다면 전부 벽에 부딪힐 것”이라고 자신의 그림에 대해 ‘걱정’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사람의 옆모습과 뒷모습을 그리는지 배우고 싶어했다. 굴리아는 반 아이들을 둥그렇게 원으로 앉힌 다음 엘리사를 원 가운데 세웠다.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에게 엘리사를 그리도록 했다.

다음날 굴리아는 아이들을 이끌고 복잡한 거리로 나가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도록 했다. 어린이들은 곧 사람들과 뒤섞여 ‘군중’이 되었다.

며칠 후 사진을 슬라이드로 뽑아서 교실의 벽에 투사한 뒤 원생들에게 기억을 되살려 다시 그림을 그리고 설명하도록 했다. 테레사는 남자친구와 개의 옆모습을 그린 그림을 소개하며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다.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력과 인지력을 갖고 있습니다. 어린이의 생각과 행동이 발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갖고 참을성 있게 지켜보는 것이 바로 교사의 역할입니다.”(굴리아)

◆삶의 현장에서 출발◆

에밀리아시의 유치원은 3,4월에 어김없이 비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마련한다. 봄이 되면 이 지역에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 빌레타유치원이 90년대 초 실시한 ‘비 속의 도시 프로젝트’.

먼저 아이들은 비가 오지 않을 때 도시의 모습을 사진 찍었다. 비가 올 때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알기 위한 사전 준비. 매일 유치원 옥상에 올라가 비를 기다리면서 아이들의 기대감은 점차 커졌다. 드디오 폭풍우가 불자 아이들은 도심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의 걷는 속도가 빨라지고 비를 피해 이리저리 뛰는 어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차로 위를 차가 지나가면서 내는 소리도 보통때와 다르다는 것, 장소에 따라 빗소리가 다르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물웅덩이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대칭’의 개념도 배우고 거리의 분위기가 어둡게 변하는 것도 느꼈다. 평소 무의미했던 도시가 비로 인해 ‘환상의 학습장’으로 변한 것.

유치원으로 돌아온 뒤 교사들은 비 소리를 그림으로 표현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웅덩이에 떨어지는 비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비 △자동차 지붕위에 내리는 비 등 다양한 빗소리를 그려냈다.

“어린이는 어른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자기에게 익숙한 주제를 던지면 아이들은 의외로 깊숙히 이해하고 스스로 알아낸다. 이때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그들은 일생 동안 자신이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을 개발한 이탈리아 교육학자 모리스 말라구찌의 말이다.

(레지오 에밀리아시로부터 최신 정보를 받고 있는 한국레지오교육연구회의 오문자 계명대 겸임교수가 이 기사의 도움말을 주셨습니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어린이의 권리’포스터▼

디애나 유치원 입구에는 10년전 5세 어린이들이 선언한 ‘어린이의 권리’를 적은 포스터가 붙어 있다.

①어린이는 친구를 가질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이들은 잘 자라지 않는다.

②어린이는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 평화롭게 산다는 것은 우리 모두 함께 살고, 우리가 관심 있는 것에 집중하고, 친구를 사귀고, 날아다니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꿈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③어린이는 실수할 권리가 있다. 자신이 한 실수를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되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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