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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21]부패고리 왜 안끊기나

입력 1999-08-10 18:46업데이트 2009-09-2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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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서울 와우아파트 붕괴, 81년 서울 현저동 지하철공사장 붕괴, 92년 신행주대교 붕괴, 93년 청주 우암상가아파트 붕괴, 94년 성수대교 붕괴,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사고원인은 한결같이 인재(人災)로 결론났다. 그때마다 정부와 건설업체들은 관련 규정을 강화해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잇달아 발생하는 대형 붕괴사고를 보면 ‘우리는 과연 이것밖에 안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건설업체들은 70년대부터 중동 건설신화를 이룩하며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이끌었으며 지금도 외국에서 선진국 업체들과 경쟁해 당당히 세계 최고수준의 건물을 짓고 있다. 일류 건설기술을 갖고 있으며 외국에서 칭찬받는 튼튼한 건물을 짓는 우리 업체들이 왜 유독 국내에서는 부실공사로 지탄받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 감리제도의 문제점을 꼽는다. 감리감독을 철저히 하면 부실공사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감리제도 실태와 개선방안을 살펴봤다.》

“한국의 건설은 야누스를 닮았다. 선진국에서도 통하는 세계 일류의 건설기술을 갖고 있는 반면 그들이 한국내에서 지은 건축물은 후진국에서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부실 투성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당시 한국에 와 있던 한 일본 건설업자가 한 말이다.

실제로 한국의 건설업은 70년대 중동 건설의 신화를 이룩하면서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고 이후 리비아대수로 건설과 말레이시아에서 세계 최고층 빌딩인 ‘콸라룸푸르 시티센터’를 지으면서 ‘건설 한국’의 성가를 높였다.

그러나 세계 최고층 빌딩이 우리 기술로 올라가는 그 시각 국내에서는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내려앉아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콸라룸푸르 현장에서 건축기사로 일했던 이모씨(33)는 “우리 기술자들이 미국 일본의 세계적인 건설사와 경쟁하며 그들보다 낫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나 고국에서 잇따라 날아든 비보로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와 건설업계는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부실공사와 이로 인한 대형참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수행하며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아 최근에는 기술지원료로만 약 1억달러를 받기로 한 국내 건설사가 국내에서는 성수대교를 시공했었다는 것을 알면 누구나 놀란다.

일류 기술에도 불구하고 부실공사가 판치는 양면성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감리가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감리자가 시공자를 철저히 감리감독하고 설계대로 공사가 되고 있는지 철저히 확인하면 부실공사가 발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

건설공사에서 차지하는 감리의 중요성에 대해 국토연구원 김재영(金宰永)박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예를 들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는 건설능력이 부족해 외국업체에 대형 건설공사를 맡기지만 감리를 철저히 한 덕분에 우리보다 더 튼튼한 건물을 갖고 있다”며 “설계도와 맞지 않거나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즉각 공사가 중단되고 재시공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 건설업자는 “외국건설회사와 외국에서 공사하는 한국건설회사는 감리에 걸리지 않기 위해 건물뼈대에 가장 많은 비용과 정성을 들이는 반면 국내에서는 보이지 않는 뼈대는 대충 넘어가는 대신 고급 인테리어 자재에 신경을 쓴다”며 “속 보다는 겉만 번지르르하게 공사하다 보니 허우대만 멀쩡한 부실한 건물이 만들어진다”고 털어놨다.

우리나라의 감리제도는 어떤가.

94년 성수대교가 무너지기 전에는 발주기관에서 감독관도 내보냈다. 감리자가 발주자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입장에서 감리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그 후 감리업무를 강화하기 위해 책임감리제도가 도입됐다. 100억원 이상의 공공공사와 300호 이상 아파트공사의 경우 민간 감리회사가 책임을 지고 감리업무를 맡는 것.

그러나 발주자와 시공자가 감리자와 유착하면 부실공사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공사 수주단계부터 관과 업체가 유착해 업체의 이익과 관청의 ‘빨리빨리식’ 실적 과시욕이 어우러져 총체적 부실공사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공사현장의 오랜 관행이 돼버린 로비자금 형성과 안전개념을 무시한 눈감아주기식 감리감독이 남아있는 한 부실공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종 감독권한이 관청에 있어 민간 감리자의 권한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감리자의 권한이 불분명해 감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감리자의 84.8%가 ‘감리업무에 대해 발주자가 개입과 통제를 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감리자의 재량권이나 자율권이 실제 건설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응답자의 67.9%는 발주자가 직접 공사지시를 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발주자는 기본적으로 공사를 저렴한 가격에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감리자의 권한을 명확하게 보장하지 않으면 공사현장에서 부실공사를 추방하기 힘들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 세미나에서 장영수(張永壽)대한건설협회장은 “감리방법이 건설기술관리법 건축법 주택건설촉진법 전력기술관리법 소방법 등으로 나뉘어 있어 1개 아파트단지 안에 2,3개 감리회사가 배치되는 등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공사감리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감리자의 권한이 애매모호해 발주자 시공자와의 갈등이 잦고 감리업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건설업체에서는 감리자의 자질을 문제삼기도 한다.

서울에서 지하철공사를 담당했던 모건설업체 K부장은 “시공은 수준급의 전문건설업자가 하는데 감리는 그보다 기술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맡는 경우가 많아 애초부터 제대로 된 감리가 안된다”고 말했다.

감리자가 우월한 기술을 갖고 공정감시는 물론 기술자문 역할까지 수행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공자보다 기술이 떨어져 감리가 제대로 안될뿐만 아니라 시공자와 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김재영박사는 건설비리 추방과 공정한 감리를 위해서는 완공후 건축물을 실제로 사용할 수요자가 어떤 식으로든 감리에 참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의했다.

그는 “누구보다 건물의 안전에 관심이 많은 건설수요자들이 공사진행 상황을 일일이 체크한다면 부실공사가 발붙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오명철차장 이병기 이철희 박현진 윤종구 부형권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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