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준의 재팬무비]시리즈 전문 감독 야마다 요지, 대단합니다

입력 2000-11-29 10:49수정 2009-09-2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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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일본극장가 박스오피스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엑소시스트 디렉터스 컷> <미녀 삼총사> 같은 외국 영화가 여전히 기세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야마다 요지 감독의 <15세/학교 Ⅳ>가 3주 째 선전하고 있군요. 흥행뿐 아니라 평론가들에게도 "감동적인 메시지가 느껴지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이래저래 성공하고 있는 셈입니다.

야마다 요지(山田洋次). 정말 대단한 감독입니다. 50편에 이르는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뿐 아니라 <학교> 시리즈까지 히트시키고 있으니 세계 최고의 시리즈 영화 감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학교> 시리즈는 3편까지 야간중학, 양호학교, 직업훈련학교 등을 소재로 해서 모조리 히트했거든요. 이제 한 청소년의 가출을 소재로 4편까지 히트하고 있으니 어찌 대단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연출작 대부분이 '좋은 영화'라는 평가를 얻고 있으니 이 또한 대단합니다.

야마다 요지는 영화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영화에서 분장을 담당했던 야마다 준지로(山田順二郞)가 아버지입니다. 어릴 때부터 봐온 게 영화 현장이라 영화인으로 자라난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지요. 1954년 쇼치쿠 오후나 촬영소에 연출부로 입사해 가와지마 유조, 노무라 요시타로, 시부타니 미노루 등과 함께 현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감독으로 데뷔한 건 1961년. <이층의 타인>(二階の他人)이란 작품을 통해서입니다. 야마다 요지가 각본까지 쓴 작품인데(노무라 요시타로와 함께 썼습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어서 꽤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샐러리맨 부부가 좀 무리를 해서 집을 이층으로 올립니다. 마음이야 뿌듯하지만 빌린 돈 갚을 일이 농담이 아닌지라 이층에 세를 내게 되지요. 헌데 세든 사람들이 모두 문제아라 골치를 썩는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데뷔작답게 달랑 56분 짜리 중편입니다. 본격적인 극장용 영화라기보다 실험작 비슷한 셈이지요.

본격적인 극장용 장편 데뷔작은 <번화가의 태양>(下町の太陽)이란 작품입니다. 제목의 '시타마치(下町)'는 적당하게 번역할 말을 찾지 못해 그냥 번화가라고 하긴 했는데, 실은 도시 저지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고지대에는 빈민가가 많고 저지대에는 상업이나 공업이 융성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냥 번화가라고 한 것이지요. 직역해서 '아래 마을'인 '시타마치'는 그런 속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야마다 요지의 '흥행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당시 같은 제목의 유행가가 엄청나게 히트했다고 합니다. 이를 놓치지 않고 야마다 요지가 같은 제목의 시나리오를 냉큼 써서 영화로 만들어버린 것이지요(여자 주인공 마치코 역으로 동명 음악을 부른 가수를 캐스팅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영화가 꽤 있죠. 조용필의 <창 밖의 여자>가 대표적입니다. 변진섭의 노래를 영화로 만든 적도 있지요. 다만 완성도가 뒤따르지 못해 히트를 못했을 뿐이지요.

하지만 야마다 요지는 경우가 달랐습니다. 도시 저지대 공장 지대에서 어렵사리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사랑 이야기를 리얼하게 담아내 작품성 면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흥행에서도 성공했습니다.

마치코는 저지대 공장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발랄한 성격의 처녀입니다. 다만 애인이 완전히 야심찬 사나이여서 너무 제 멋대로인 게 문제였습니다. 이때 나타나는 남자가 료스케. 입은 험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전형적인 '싸나이'였지요. 두 사람은 점점 사랑에 눈 떠 갑니다.

이런 이야기로 무슨 작품성이냐, 할지도 모르지만 저널리즘 평론가들은 대부분 "연인들이 대화를 나누는 신에서 표정과 행동을 컨트롤하는 야마다 요지의 연출 솜씨가 천하일품"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야마다 요지의 이런 장점은 이후 <남자는 괴로워>나 <학교> 같은 시리즈 작품에서 유감없이 힘을 발휘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를 한 편의 가슴 따뜻한 영화로 만들어내는 재주를 발휘해 세계 최장의 시리즈 영화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아카데믹한 평론가들은 야마다 요지를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야마다 요지는 새로운 어법이나 깊이 있는 영상, 철학적인 연출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감독이 죄다 깊이 있고 철학적인 영화를 추구한다면 세상 극장가는 얼마나 칙칙해질까요. 왠지 허전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봐도 가슴이 절로 따뜻해지는 영화, 이것이 야마다 요지가 추구하는 영화 세계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감독이 한 명쯤 있으면 좋겠지요.

김유준(영화칼럼리스트) 6609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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