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의 續세상스크린]선배 vs 선배님

  • 입력 2004년 5월 11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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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청문회가 재미있는 것은 ‘리얼 타임’으로 전개되는 현장감이 살아 있어서입니다. 저도 시간나면 가끔 봅니다만 하나 거슬리는 것이 호칭 문제입니다. 국회의원님들은 남에게 경어를 반듯하게 사용하는 것이 마치 국회의원의 권위를 지키지 못한다고 생각해서일까요. 입술을 힘주어 양쪽으로 내리며, “본 의원은…”이라고 발언을 시작하는 의원들은 대부분 할 말이 막히면 “장관!”이라며 소리칩니다. 그냥 겸허하게 “제가”로 시작해 “장관님”하며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친다면 진정 권위를 갖게 될 텐 데 말이죠.

저도 후배들이 ‘형’이나 ‘선배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박 선배’라고 해올 때면 차라리 박중훈씨라고 불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존경과 우애가 없을 바엔 차라리 ‘사회적 거리감’이라도 두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서죠. 제가 고루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님’자 빠진 선배라는 호칭 뒤에는 적당히 가까이 가서 맞먹겠다는 의도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언론계 같이 그것이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굳어진 경우도 있겠지만 충무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말이 나와서 그렇지 저희 배우들에겐 직함이 없습니다.

회사를 경영하거나 조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박중훈 사장님이나 박중훈 과장님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박중훈 배우, 박중훈 배우님이란 호칭은 듣는 이에게 다소 생소할 겁니다.

충무로에서야 오랫동안 서로 다 아는 처지라서 ‘중훈아’에서부터 박 배우, 형, 선배님으로 불립니다. 어떤 선배님들은 익살스럽게 웃으면서 ‘박 스타’라고 불러주기도 합니다.

저도 후배 배우가 많은 사람들 앞에 있을 땐 이름을 막 부르기가 뭐해 ‘무슨 스타’라며 장난하는 척 예우를 합니다. 물론 여기서 스타는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무슨 왕자병처럼 별 의미를 두는 말은 아닙니다. 그냥 충무로에서 오랫동안 배우를 불렀던 애칭일 뿐입니다.

충무로 밖으로 나오면 대부분 박중훈씨가 됩니다. 하지만 제가 보수적이라서가 아니라 저와 나이 차가 많은 청소년이나 학생이 그렇게 부르면 좀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씨’라는 말은 원래 훌륭한 경어겠지만, 현실적 어감으로는 나이 차가 많은 연배의 사람에게 붙이기에는 안 어울릴 때가 많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선생님 소리를 듣자는 건 더 더욱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경우 이름 뒤에 ‘님’자를 붙인다면 자연스럽고 부드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우리말에는 글자 하나가 갖는 의미가 클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님’자의 의미는 무척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 선배님, 승객님에서 ‘님’자를 빼고 부른다면 분위기는 어색하고 삭막해질 게 뻔합니다.

그 ‘님’자 한 글자가 예의 있고 없음의 잣대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당사자를 부르는 호칭은 중요한 배려가 됩니다.

우리말의 호칭과 경어는 미묘하고 복잡해 심지어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런 만큼 바르게 잘 사용한다면 어느 언어보다도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표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대화의 출발은 상대를 부르는 예의 바른 태도가 아닐까요?moviejh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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