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를 이끌 감독들]'충무로 반항아' 임상수 감독

  • 입력 2000년 2월 24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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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쯤, 필자는 40대 중반 동세대 감독들에 대해 ‘전후 2차 베이비 붐 세대라 숫자는 많은데 도대체 기성에 도전하는 용기와 창의성이 부족한 한심한 족속들’이라고 쓴 적이 있다. 이 글이 꽤 반향을 일으키자 ‘우리 세대는 얼치기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으니 6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새로운 세대의 영화를 기다린다’는 더욱 기고만장한 글을 쓴 적도 있다.

임상수 감독(38)은 필자의 이처럼 섣부른 매도와 기대가 전적으로 틀리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주는 밀레니엄 한국 영화계의 뜨거운 피다. 나는 사실 그의 영화보다는 그의 말과 행동을 더 좋아한다. 이제 겨우 장편영화 한 편을 세상에 등재한 이 새파란 감독의 작가론을 쓰기란 가소로운 일이 아닌가?

▼솔직하고 전투적 비판 전매특허▼

임상수 감독은 무엇보다 솔직한 남자다. 그는 지난해 봄 한 잡지의 주선으로 필자와 만나 한국의 영화문화를 주제로 대담하는 자리에서도 이름 석자를 밝히는 ‘실명 비판’을 줄기차게 외쳤다. 그러나 덜컥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임상수 감독의 전매특허인 실명공개 비판의 날카로운 비수가 필자를 향해 날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필자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얼르고 달래고, 병주고 약주는 식의 한국영화 평론문의 도식적 틀을 벗어나지 않는 비평가의 전형’이라고 썼다. 그의 첫작품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개봉됐을 때 ‘에로 영화’로 매도되는 꼴을 보다 못해 “한국 영화의 경계를 최소한 한 뼘은 넓혀 놓았다”는 극찬을 보냈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나는 임상수 감독의 좌충우돌식 호전적 태도가 좋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충무로의 알아주는 싸움꾼이었다. 제작자는 물론이고, 선배 감독 그리고 배우들과도 많이 싸웠다. 거들먹거리는 한 스타와 주먹이 오간 사건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임상수 감독의 이런 솔직함과 호전성이 사회학을 전공한 지성과 결합해 우리 시대의 가장 풍성한 성 담론의 향연을 담은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나타났다.

▼서사적 性담론 영화계 반향▼

나는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한국의 영화사는 물론이고, 성 풍속의 역사에서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보다 더욱 지속적이고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짓말’이 두 번 보기 괴로운 건조하고 위악적인 다큐멘터리라면,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사회에 대한 풍성한 기호들로 가득한 서사와 형식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임상수 감독은 지금 서울 영등포 가리봉동 유흥업소를 떠도는 10대 네 명의 이야기를 디지털 비디오와 3억원의 제작비, 그리고 아마추어 배우라는 ‘가난한 첨단 미학’으로 표현하는 두 번째 영화 ‘눈물’을 만들고 있다. 그 소식을 접했을 때 필자는 ‘임상수답다’고 생각했다. 필자는 임상수 감독이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기 전에 더욱 솔직하고 전투적인 30대의 영화 연보를 보여주기 바란다. 그렇다면 최소한 지금 영화계를 주름잡는 386 감독들을 용기없는 한심한 족속들로 몰아치는 비평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강한섭 (서울예대 교수·영화평론가)

▼임상수감독 프로필▼

△1962년 생

△1988년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1989년 영화아카데미 졸업

△1989∼1992년 ‘구로아리랑’ ‘장군의 아 들’ ‘개벽’ 연출부, 1994년 ‘김의 전쟁’ 조감독, 1995년 ‘영원한 제국’ 시나리오 작가

△1998년 ‘처녀들의 저녁식사’ 연출

△1998년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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