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가을엔 싱숭생숭…이유있네

  • 입력 2001년 11월 12일 18시 54분


가을이 깊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을을 타고 있다. 낙엽만 봐도 왠지 슬퍼지고 옛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단지 기분 탓일까. 그렇지 않다.

가을이 되면 해가 떠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온도가 떨어진다. 원시인에게는 먹을 것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에 맞춰 우리 몸도 격심한 ‘구조조정’이 일어난다.

미국 오하이오대 랜디 넬슨 교수는 생쥐의 경우 가을이 되면 면역 기능이 강화된다고 ‘영국왕립학회보’ 최근호에 발표했다. 햇빛을 쬐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몸 안에 멜라토닌이라는 물질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식 능력은 반대였다. 수컷 생쥐는 햇빛 쬐는 시간이 줄어들면 생식과 관련된 조직이 위축됐다. 넬슨 박사는 “가을이 되면 먹이가 줄어드는 등 환경이 나빠지기 때문에 생식에 쓰일 에너지를 우리 몸을 지키는데 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동물들의 발정기는 대개 봄이나 여름이다. 그때 새끼를 가져야 먹이가 많을 때 키울 수 있다. 가을에 새끼를 가지면 겨울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서울대공원의 권순호 연구실장은 “가을이 되면 동물들은 이성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따뜻한 여름에 이완된 혈관도 가을이 되면 다시 좁아진다. 혈관이 넓으면 체온을 빨리 빼앗기기 때문에 가을과 겨울을 잘 견디기 어렵다. 혈관이 좁아지면서 바깥으로 나온 체액은 세포로 흡수되는 등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이 우리 몸에는 큰 스트레스다. 이 스트레스가 너무 크면 우리 몸은 쉽게 피로해진다.

연세의대 강희철 교수는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가을이 되면 한가지 일에 오래 집중하기가 어렵고 외부 자극에 대해서도 민감해진다”며 “사람이라면 자꾸 다른 생각이 들고 별것 아닌 일에도 마음이 싱숭생숭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을을 타는’ 것이다.

동물들은 가을이 되면 모여 있으려고 한다. 여럿이 함께 있으면 서로의 체온으로 몸을 녹일 수 있다.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낚시꾼은 장소만 잘 잡으면 월척을 떼로 낚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가을 낚시는 낭패를 보기 쉽다. 물고기들이 가을이 되면 식욕이 떨어지고 몸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아 미끼에도 눈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 교정에 가면 까치가 잔디밭에 내려앉은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겨울에 대비해 먹을 것을 잔디밭에 숨기기 위해서다. 가끔 기억력이 나쁜 까치는 자신의 식량 창고를 깜빡 잊고 겨울을 난다. 강원대 권오길 교수(생물학과)는 “까치나 청설모가 잣을 숨겨놓은 뒤에 파먹지 않아 봄이 되면 잣나무가 자라는 곳이 많이 생긴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간이 도시 생활을 하면서 ‘계절을 타는’ 행동은 점점 달라지고 있다. 일본 연구팀이 60년대 조사한 결과 봄이 되면 여성의 경우 갑상선 호르몬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이 활동하려는 욕구가 왕성해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이같은 현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연구팀은 일본 여성들의 식사에서 탄수화물의 비율은 줄어들고 지방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을이 되면 사라졌어야 할 모기가 따뜻한 집안에서 여전히 날아다니고, 바퀴벌레는 사시사철 번식력이 왕성한 것도 도시가 가져온 변화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도 과학이 발전하면서 언젠가는 고어(古語)로 남을지 모른다.

<김상연동아사이언스기자>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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