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3년 6월 12일 18시 20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조선을 떠나기 하루 전에 이렇게 만난 것도 무슨 인연이겠지. 3년 동안 열심히 일하면, 백엔쯤 모으는 것도 꿈이 아니야. 효도하는 셈치고 부모님한테 보내드리는 것도 좋겠지, 부모란 언제까지 살아 있는 게 아니니까. 우리 아버지는 내가 열여섯 살 때 죽었어. 진학을 포기하고 쓰쿠후 산에서 석탄 캐느라고 고생 좀 했지. 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좀 편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해서 한 일이야. ‘효도와 불조심은 재가 되기 전’이란 말 아느냐?”
“아니오.”
“비석에 이불 씌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은.”
“모르겠는데요.”
“부모님 살아 계실 제 효도란 말 정도는 학교에서 배웠겠지?”
“네, 그 말은.”
“부모님 말씀하고 찬술은 나중에야 듣는다란 말도 있지, 너는 아직 술을 못 마셔봤을 테니까 잘 모르겠지만, 하하하하하. 아무튼 내일, 삼랑진역에서 몇 시라고 했지?”
“8시요.”
“그래! 그럼, 내일.”
“잘 부탁드립니다.”
에이코는 허리 굽혀 꾸벅 고개 숙이고 강둑으로 올라가는 남자를 배웅했다. 만세! 일자리를 구했어! 그런데 저 아저씨 아주 친절하기는 한데, 설교가 많은 게 흠이네. 하카타까지 가는 동안 저 설교 듣느라고 귀에 못이 박이겠어, 뭐 어때 그 정도야. 나 얼마든지 자는 척 할 수 있으니까, 엄마하고 그 남자가 밤중에 몰래 몰래 하는 거, 나 늘 자는 척 모르는 척 하고 있는데 뭐. 아아, 벌써 캄캄해졌네, 그 남자, 소리 꽥꽥 지르면서 화내겠지, 시집도 안 간 가시나가 밤늦게 돌아다닌다고. 됐어, 괜찮아, 그냥 떠들라고 놔둬, 오늘 밤이면 안녕이니까. 내일 아침 8시면 나, 밀양에 없을 테니까. 앞일은 일하면서 천천히 생각하면 되지, 백엔이면 큰 돈이야, 백엔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어, 잘하면 부산여고에도 들어갈 수 있고, 어쩌면 엄마 그 남자하고 헤어져서 나하고 오빠하고 셋이서 오붓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몰라, 만세, 만세!
글 유미리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