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도서관]‘말놀이’라는 오은 시인의 시 철학…‘1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6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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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주된 방법론으로 ‘말놀이’를 사용하는 오은 시인. 동아일보 DB
시의 주된 방법론으로 ‘말놀이’를 사용하는 오은 시인. 동아일보 DB

‘11월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사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밤만 되면 꾸역꾸역 치밀어오릅니다
어제의 밤이, 그제의 욕심이, 그끄제의 생각이라는 것이.’

-오은 시 ‘1년’ 중에서

오은 시인의 ‘1년’은 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를 한 연 한 연 적어나간 작품이다. ‘1월엔 뭐든지 잘될 것만 같았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가을에 해당하는 달에 대해 이렇게 쓴다. ‘9월엔 마음을 다잡아보려 하지만/ 다 잡아도 마음만은 못 잡겠더군요/ 10월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책은 읽지 않고 있습니다.’

‘다잡아보려 하지만/ 다 잡아도’라는 부분에선 ‘말놀이’라는 시인의 시 철학이 떠오른다. 웃음이 절로 나오는 시구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의 캐치프레이즈를 가볍게 뒤집는 ‘여전히, 책은 읽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부분 또한 그렇다.

이제 11월. 가을은 사랑하고 결혼하는 계절이라는데 시적 화자는 ‘여전히, 사랑은 하지 않고 있’다. 가을밤 그를 붙드는 것은 어제의 밤, 그제의 욕심, 그끄제의 생각 같은 지난 시간들이다. 왜냐 하면 한해의 마지막이 가까워오고 있어서다. 11월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그렇다. 올 한해 품었던 생각을, 욕심을, 원하고 계획한 만큼 이루지 못했던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11월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지난 시간을 정리하기엔 한국인에게 12월은 너무 바쁘지 않은가. 오은의 시 ‘1년’ 중 12월은 이렇다. ‘올해도 작년처럼 추위가 매섭습니다/ 체력이 떨어졌습니다 몰라보게/ 주량이 줄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잔고가 바닥났습니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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