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한장의 지도는 많은 걸 말한다

  • 입력 2005년 4월 8일 16시 59분


코멘트
세계화와 잦은 해외여행으로 오늘날 외국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관심이 무척 커졌다. 그래서인지 지도에 대한 흥미도 높아졌다.

학창 시절 나는 사회과부도와 역사부도 보는 재미에 빠진 적이 있다. 세계 각지의 위치를 확인하며 언젠가는 가 보리라 마음먹었다. 광개토대왕이 넓힌 고구려의 세력 범위에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도로교통안내지도 외에는 지도를 보지 않게 되면서 나의, 아니 우리의 ‘지리적 상상력’은 목적지까지 빠르게 가는 길을 찾는 실용성에 갇혀 버렸다.

‘지명으로 보는 세계사’(시공사)에서 세계 곳곳의 지명과 다시 만나 보자. 지도제작자 발트제뮐러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거짓 주장을 받아들여 신대륙을 아메리고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로 명명한 사연, 몽골인이 중국의 지배자 즉 원수가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쿠빌라이가 국호를 원(元)으로 정한 일 등 지명에 얽힌 사연들이 다채롭고 흥미롭다. 거실에 놓아두고 온 가족이 펼쳐 보기 좋은 책으로 ‘아틀라스 한국사’(사계절출판사)가 있다. 울릉도 및 독도 근해를 눈여겨보니, 1905년 5월 러일전쟁 당시의 해전 상황이 일목요연하다. 지도에 따르면 울릉도 및 독도 근해에서 러시아 발틱 함대 소속 베두이호, 니콜라이호, 아리욜호, 아브락신호, 세냐윈호가 일본군에 항복했고, 드미트리 돈스코이호는 격침됐다. 독도는 외로운 섬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이자 목격자였다.

한편 지도가 지도 이상이라는 것, 지도는 사람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틀이자 문명교류사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 주는 책으로 ‘세계지도의 역사와 한반도의 발견’(살림)이 있다. 세계 지도의 변천 과정, 지도 제작술, 탐험 이야기, 서양 지도의 전래가 미친 충격 등 굵직한 주제들을 요령 있게 정리했다. 세계 지도가 제 모습을 갖추어 가는 과정에서 한반도가 어떻게 이해되고 어떤 모양으로 묘사됐는지도 알 수 있다.

독일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쿠르트 투홀스키는 ‘한 점의 그림은 천 개의 단어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고 했다. 이 말에서 그림을 지도로 바꾸어도 좋지 않을까?

표정훈 출판평론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