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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놀이와 예술’]<5>視覺의 장난, 왜곡상 - 거울놀이

입력 2004-07-12 18:29업데이트 2009-10-0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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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브레유의 ‘피라미드 왜곡상을 위한 계획’. 피라미드 거울을 사용해 동서남북 네 사람의 얼굴을 합쳐 하나의 얼굴을 만들어 내는 반사왜곡상의 원리가 담겨 있다.-사진제공 진중권
어디서 봤더라? 어린 시절 누구나 신기한 거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거울은 몸을 뚱뚱하게 만들고, 다른 거울은 몸을 홀쭉하게 만든다. 볼록거울과 오목거울 앞에서 아이들은 마치 마법에나 걸린 듯이 우스꽝스러운 뚱보나 홀쭉이로 변한다. 마법에 걸린 몸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을까? 왜 없겠는가. 볼록거울 위에 비친 왜곡상은 같은 곡률의 오목거울에 비추면 마법이 풀린다.

맨 오른쪽 그림○1 역시 마법에 걸렸다. 저게 대체 뭘까? 마법을 풀려면 원기둥 모양의 실린더 거울이 필요하다. 7년 전이던가? 로마의 한 박물관에서 저런 유의 그림을 처음 접했다. 전시된 원화 옆의 테이블 위에는 원화를 복제한 그림이 놓여 있어, 관람자가 직접 그 위에 실린더 거울을 대 보게 되어 있었다. 그림 속의 둥근 부분에 실린더 거울을 올려놓으니 인물의 상이 나타난다. 프랑스의 왕 루이 13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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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축, 반사, 굴절-왜곡상의 3원칙

이 그림을 그린 장 프랑수아 니세롱은 17세기 프랑스의 수도승으로 왜곡상(anamorphosis)을 이론화한 사람이다. ‘신기한 원근법’이라는 책에서 그는 왜곡상을 크게 세 부류로 분류한다. 하나는 지난 회에 본 것처럼 특수한 시각에서만 제 모습이 보이는 ‘단축 왜곡상’, 다른 하나는 위처럼 특수한 모양의 거울에 비춰야 제 모습이 드러나는 ‘반사 왜곡상’, 마지막 하나는 보석이나 프리즘을 이용한 ‘굴절 왜곡상’이다.

굴절 왜곡상은 정교하기가 암호문을 방불케 한다. 가령 두개골의 이미지를 28각의 다이아몬드를 통해 평면에 투사한다고 하자. 그러면 두개골이 28개의 파편으로 쪼개져 평면의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흩어질 것이다. 이를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보려면, 28각 다이아몬드에 렌즈를 끼운 현미경 모양의 해독경(解讀鏡)이 있어야 한다. 다이아몬드를 통해 뿌린 파편들을 다이아몬드를 통해 다시 거두는 셈이다.

이에 비해 반사 왜곡상의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먼저 투명한 셀로판지 위에 원하는 그림을 그린다. 그림이 완성되면 그 셀로판지를 원기둥의 형태로 둥글게 만다. 그 원기둥 안에 촛불을 집어넣고, 도화지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면 촛불에서 나온 빛이 투명한 셀로판 원기둥을 통과해 도화지 위에 일그러진 형상을 만들어 낼 것이다. 바로 그 형상의 윤곽을 따서 채색만 하면 상이 완성된다.

이 역시 그저 할 일 없는 장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학창시절 교실의 앞이나 뒤에 걸려 있던 세계지도를 생각해 보라. 지구본과 비교해 보면 러시아나 캐나다의 면적이 어처구니없이 크게 나타나지 않던가? ‘메르카토르 도법’ 역시 일종의 반사 왜곡상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지도를 원기둥의 형태로 말아, 그 안에 구형(球形)의 거울을 집어넣어야 할 것이다. 그럼 공 모양의 거울이 은빛 찬란한 지구본이 될 것이다.

● 거울아, 거울아 말해 다오!

1789년 독일에서 제작된 피라미드 거울을 이용한 반사왜곡상. 사방으로 흩어진 그림이 피라미드 거울에 비치면 하나의 그림(가운데)으로 완성된다.-사진제공 진중권

반사 왜곡상에 실린더 거울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원뿔 거울도 즐겨 사용되는 것 중의 하나다. 실린더 거울의 경우에는 상이 원기둥의 표면에 맺힌다. 원뿔 왜곡상의 경우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그림의 중앙에 거울을 올려놓고, 거울의 꼭짓점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봐야 제 모습이 드러난다. 반사 왜곡상의 제작에는 원기둥, 원뿔 외에 때로 피라미드형 거울이 사용되기도 한다.

피라미드 거울을 사용하면 또 다른 표현의 가능성이 열린다. 가령 종이 위에 동서남북으로 네 사람의 얼굴을 그려 넣는다. 그 가운데에 피라미드 거울을 올려놓고, 피라미드의 꼭짓점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러면 각각 다른 얼굴을 비추는 네 조각의 거울상이 꼭짓점을 중심으로 모여, 불현듯 또 다른 얼굴을 만들어낼 것이다. 실제로 그런 시도가 있었다. 그림을 보라.

이를 이용하면 재미있는 정치풍자도 가능하다. 가령 저 그림 속 네 인물의 위치에 김영삼, 김대중, 이회창, 최병렬씨의 얼굴을 그려 넣는다. 그 중간에 피라미드 거울을 올려놓으니, 이런, 외람스럽게도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컴퓨터로 포토숍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가벼운 조작만으로 소위 열렬한 ‘노빠’들을 예술적으로 흥분시킬 수 있다.

왜곡상은 알아보기 힘든 형체 속에 참모습을 감추고 있다. 이 특성에 힘입어 왜곡상은 잊혀진 종교적 진리를 말하거나, 은밀한 정치적 풍자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왜곡상이 늘 진지한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직설적으로 보여주기 뭣한 남세스러운 장면을 묘사하는 방법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중에는 남녀가 질펀하게 열애를 하거나, 한 사내가 바지를 까고 쭈그리고 앉아 열변(熱便)을 토하는 장면도 있다.

● 왜곡상이 부활하는 이유

왜곡상은 17세기만 해도 주로 사회의 엘리트층이 즐기던 지적 놀이였다. ‘광학(光學)’에 대한 연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19세기에 들어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왜곡상을 기계적으로 제작하는 방법이 개발되고, 발달한 인쇄술에 힘입어 대량생산과 대량보급이 이뤄지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왜곡상은 서민층이 즐기는 가벼운 오락으로 전락해 한동안 유행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왜곡상은 제대로 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해 오랫동안 어두운 박물관 창고 안에서 그냥 썩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각광받게 됐다. 이는 아마도 일의적(一義的) 메시지보다 중의적(重義的) 표현을 선호하는 ‘포스트모던’의 철학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울러 시각매체 및 매체이론에 대한 관심도 왜곡상이 부활하는 배경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현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정교한 것은 아마도 헝가리의 디자이너 이스트반 오로스의 것이리라. 그의 작품은 험준한 산으로 이루어진 황량한 풍경을 보여 준다. 실은 심술궂은 마법사가 있어,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저 황량한 곳에 한 사람을 가둬 놓았다. 어디에? 그것을 보려면 특수한 거울이 필요하다. 그림에 실린더 거울을 갖다 대면, 원기둥의 표면에 한 인물이 나타난다. 누굴까? 공상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의 작가 쥘 베른이라고 한다.

진중권 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①장 프랑수아 니세롱의 ‘루이 13세의 초상’(1635년) ②위의 그림을 원기둥 거울에 비췄을 때 나타난 ‘루이 13세의 초상’ ③원기둥 거울에 비춰졌을 때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정확한 상이 잡히는 요한 미카엘 브루커의 ‘원기둥 왜곡상’(1800년) ④황량한 풍경을 원기둥에 비췄을 때 공상과학소설가 쥘 베른이 나타나도록 한 헝가리 디자이너 이스트반 오로스의 ‘쥘 베른’(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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