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 배심원평결]집에서도 화장하라는 남편

  • 입력 1998년 12월 29일 19시 30분


▼ 남편생각 ▼

배 준(30·대홍기획 오디오PD)

결혼하고 애를 키우다보면 부부 간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지요. 연애할 때만해도 남자는 무스 바르고 여자는 화장하다가 결혼 후에는 ‘넌 그렇게 살아라, 난 이렇게 살란다’는 식이 되는 겁니다.

부부가 애인처럼 지내려면 어느 정도의 화장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남남이 서로에게 끌려서 결혼하게 된건데 결혼 후에도 서로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죠.

저는 여자의 화장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라고 봅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정말 남편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다면 가벼운 화장 정도는 하는 것이 나을 거에요.

아이를 키우며 화장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지만 애도 예쁜 모습을 하고 있는 엄마를 보는 것이 더 좋을 겁니다. 집안 살림만 한다고 외모를 가꾸지 않는 건 아내 자신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물론 화장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조금 더 부지런해질 만큼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남편을 위해 그만큼 신경써주기를 바라는 거죠.

남편도 남자랍니다. 밖에서 일하다 집에 들어왔을 때 화사한 모습의 아내가 맞아주기를 바라는 게 잘못일까요.

▼ 아내생각 ▼

이성희(30·주부·서울 강남구 대치동)

남편과는 4년간의 연애를 거쳐 4년동안 결혼생활을 했어요.

남편은 결혼 후부터 “집에서도 가벼운 화장은 하는 게 어때”라고 얘기하곤 해요. 하지만 저는 ‘집에서는 편하게 지내야 한다’며 버텼죠. 아기를 키우면서 집안일을 하다보면 화장한 얼굴이 얼마나 불편하지 남자들은 몰라요.

깨끗이 빨래해서 널다가도 세탁물에 화장이 묻을 수 있죠, 또 아이에게 뽀뽀를 해주려고 해도 맘대로 할 수 없어요. 기껏 화장을 했는데 세살난 준현이가 장난을 쳐서 망쳐놓으면 괜히 화풀이를 하게 될 수도 있고요.

요즘처럼 빠듯한 살림에는 화장품값도 부담이 된답니다. 별일없이 집에서 화장을 하고 있는 건 일종의 과소비라고 봐요.

화장이 그렇게 간단한 일도 아니죠. 아무리 가볍게 화장해도 20∼30분은 걸리는데다 지우는데도 시간이 걸려요. 손님이 찾아오거나 외출하는 것도 아닌데 집에서 화장하고 있는다는 건 정말 시간낭비예요.

남편은 IMF사태 이전 저녁 8시면 들어오다가 요즘은 밤11시가 넘을 때가 많아요. 밤늦게 들어와 잠시 보는둥 마는둥 하다가 아침 일찍 나가는 남편을 위해 화장을 하는 건 너무 번거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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