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쌍화탕-우황청심원 만든 ‘한방계 전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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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업계 큰별 최수부 광동제약 창업주

한방(韓方)의 과학화에 앞장서며 국내 제약업계에 큰 획을 그은 광동제약 창업주 최수부 회장(사진)이 24일 별세했다. 향년 77세.

최 회장은 이날 강원 평창군의 한 골프장 라커룸에 딸린 욕실에서 숨졌다. 휴가 중이던 고인은 오전에 아내, 사돈 부부와 함께 라운딩을 마친 뒤 라커룸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참을 나오지 않아 종업원이 라커룸을 확인하던 중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 시신을 확인한 의사는 사인을 심장마비로 추정했다”고 밝혔다. 유족은 경찰 조사에서 “고인이 평소 고혈압과 당뇨 등 지병이 있었고 약 10년간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맨손에서 시작해 연매출 4000억 원 규모의 중견 제약·유통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1936년 일본 후쿠오카 현에서 5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소학교 3학년 때 ‘조센진’이라 놀리는 일본인 동급생들을 때려눕혀 학교에서 쫓겨났다. 광복 후 귀국했으나 부친의 병환으로 12세 때 아홉 식구의 가장이 됐다.

군 제대 후 1960년 고려인삼산업사에 외판원으로 입사해 3년 연속 판매왕을 차지했다. 이때 모은 돈으로 1963년 광동제약사를 창업했다. 이후 한방 과학화에 매진해 ‘거북표 우황청심원’(1973년)과 ‘광동쌍화탕’(1975년) 등 히트작을 잇달아 내놓았다. 최 회장은 1992년에 약품 재료를 꼼꼼히 확인하는 모습이 우황청심원 TV 광고로 방영돼 소비자들에게 알려졌으며 이때 ‘최씨 고집’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회사가 부도 위기에 몰렸지만 과감하게 사재(私財)를 출연해 회사를 회생시켰다.

이후 2001년 ‘비타500’과 2006년 ‘옥수수수염차’ 등의 성공으로 음료업계에서도 입지를 단단히 굳혔다. 특히 비타500은 2000년대 중반에 자양강장 드링크 시장에서 1등을 고수하던 동아제약의 박카스를 밀어내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제주 삼다수’의 유통사업권도 따냈다.

최 회장은 제약산업 발전과 국민건강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목련장(1996년) 등 훈포장을 받았으며 저서로 ‘뚝심경영’(2004년)이 있다. 유족으로는 박일희 여사(66)와 1남 4녀가 있다. 최성원 광동제약 사장(45)이 외아들이며 이강남 광동한방병원 이사장이 셋째 사위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20호실이며 영결식은 28일 오전 8시 반에 열린다. 장지는 충남 천안시 선산. 02-3010-2631

류원식 기자·평창=이인모 기자 rews@donga.com
#최수부#광동제약 창업주#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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