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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최철주의 ‘삶과 죽음 이야기’]<15>어린이 말기환자도 존엄을 찾아줄 수 없을까

입력 2012-11-27 03:00업데이트 2012-12-1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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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주 칼럼니스트최철주 칼럼니스트
일본 오사카 시내에 어린이 전용 호스피스 병동이 이달 초에 문을 열었다. 어른들에 끼여 치료를 받았던 소아 말기 환자들을 따로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어서 벌써 만원사례라고 한다. 어린이 암 환자가 계속 늘어나 일본 정부도 민간 의료기관에만 의지할 수 없었던지 연말까지는 전국 10여 군데 병원에 별도의 소아 호스피스 병실을 마련하도록 주선하겠다는 방침을 서둘러 발표했다.

日 소아전용 호스피스 병동 문 열어

오사카의 히가시요도가와 구에 있는 어린이 호스피스 병동은 어린이들에게 결코 항암제 등을 주사하지 않는다. 통증 완화 의료와 함께 재활치료가 중심이다. 학교 선생님도 친구들도 시간제한 없이 면회하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스케줄이 짜여 있다. 부모들은 자녀와 병실에서 같이 잘 수 있다.

음악과 미술 치료사들도 환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삶과 이별하는 시간은 가까워지지만 어린이 환자들은 미래를 짐작하지 못한 채 즐겁기만 하다. 부모들은 눈물을 감춘다. 세상과 하직하는 연습 시간이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가끔 어린이들의 암 투병을 둘러싸고 가족이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방송한다. 그것도 가장 시청률이 높은 저녁과 아침 시간대에 프로그램을 편성한다. 어린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죽음은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나라 어린이 말기 환자들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들이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간호사들에게서 자주 듣는다. 일본처럼 어린이들에게도 존엄을 갖춰 줄 수는 없을까.

나는 서울의 종합병원에 있는 어린이 병동을 들를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엄마들이 부스스한 얼굴로 앉아 있는 중환자실 대기석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문이다. 공기는 무겁고 탁하게 느껴진다. 수간호사를 따라 중환자실에 들어섰다. 5개의 침대에 누워 있는 어린이 환자들. 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3명의 어린이는 팔 다리가 묶여 있다. 줄줄이 달아 놓은 링거 줄이며 영양제, 항생제 등의 튜브를 잡아당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온 종일 잠만 자는 아이들도 있다. 20분 짧은 면회 시간에 엄마 아빠가 아이에게 사랑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 방식은 팔 다리를 만져 보는 일뿐이다.





‘우리 애가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며 한숨쉬는 엄마들의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고 간호사는 말한다. 그러다 어느 때 쯤 아이들은 ‘엄마’를 불러볼 틈도 없이 바람처럼 떠나 버린다. 그들을 어린 천사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처량하다. 그런데도 엄마 아빠들은 어쩌지를 못하고 중환자실 밖에서 절망의 시간을 보낸다.

부모는 중환자실 밖에서 절망의 시간

경기 고양시에서 만난 정은주 씨도 칼날 위에 서 있는 듯한 고통의 세월을 지냈다. 나는 그에게서 강한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6년 전 뇌종양으로 세 살 된 딸을 잃었다. 병원에서 위급 상황에 몰렸을 때 그가 선택한 것은 아이를 위한 존엄한 삶이었다.

“딸을 치료하기 위해 다녀 보지 않은 병원이 없어요. 서울의 큰 병원은 다 찾아다녔지요. 의사들은 아이의 뇌종양을 치료하기 위해 우선 머리를 열고 수술해야 한다고들 했어요. 중환자실에서 다른 아이들이 팔 다리가 묶여 있는 현장을 목격했는데 그 침대에 우리 아이도 눕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상상하기 싫은 장면이었어요. 거기에다 수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듣기 어려워요. 어떤 병원에서는 ‘아이 수술하면 죽어요’라고 겨우 한마디해 줬어요. 너무 어려서 수술할 수도 없고 치료 효과도 없다는 뜻이겠지요. 의사가 그렇게 딱 잘라 이야기하는데 그 다음 대책이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방사선 치료도 할 수 없고 그냥 모든 게 고통스러운 삶의 연장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런데도 우리 아이에게 자꾸 수술하자고 하는 의사도 있었어요.”

―그래서 아이는 계속 중환자실에 두었나요?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지요. 면회 시간에 아이 얼굴만 쳐다보고 나오고 또 그렇게 하고. 어느 날 내 아이의 삶이 저런 식으로 끝나도록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집에서 간병하면서 아이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의사들에게 퇴원시켜 달라고 했는데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위험하다는 거지요. 그러다 간신히 퇴원 승낙을 받아서 집에서 간병하기 시작했습니다. 호스피스 수녀님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딸아이가 집에 와서는 죽도 먹고 인형을 안고 놀았는데 그 행복한 시간을 난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어요. 아이에게는 마지막 시간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의 의식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자는 듯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퇴원하고 두 달 후였어요. 그래도 그 아이를 엄마 아빠 옆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한 게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마지막 삶을 위해서요. 만약 병원 중환자실에 계속 있었다면 하고 상상해 보기도 하는데 정말 싫어요.”

딸의 유골을 대관령 골짜기에 날려 보낸 후 그는 학교에 사표를 제출했다. 교단에 설 힘이 없었다. 그는 세상을 떠난 아이의 사진으로 어른이 된 모습을 시뮬레이션 하는 프로그램에 잠시 눈을 팔며 딸을 그리워했으나 곧 그만두었다. 이 땅에서 딸의 생명은 끝났지만 자신 안에서 되살아나는 질문이 있었다. 아이의 삶에 어떻게 답해야 할 것인가.

집에서 행복한 시간 가졌으면…

그는 중환자실 침대에 묶여 있는 어린이 환자들에 대한 잔인한 기억을 지워 버리고 다른 부모들의 슬픔을 치유하는 교육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들에게도 죽음 교육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이겨 낼 힘을 길러 주는 그런 교육이 정말 필요해요. 내가 몸으로 겪어 보니 그런 교육의 힘이 있어야 되겠어요. 우선 대안학교에 가서 그걸 가르쳐 보고 싶어요.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은 어떻게 죽음 교육을 받고 있는지 자료도 수집하고 있어요. 앞으로 내 삶은 아이 잃은 부모를 위해 살 것입니다. 제 아이와의 약속이기도 하고요.”

주변에서 어린이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본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병원에 들어서면 그들이 고통 받는 다른 세상이 보인다.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의 한 언덕에는 수많은 어린이 천사의 십자가가 꽂혀 있다. 그 앞에 서 있으면 우리는 잠시라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최철주 칼럼니스트 choicj11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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