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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최철주의 ‘삶과 죽음 이야기’]<5>아내가 세상을 떠난 방법

입력 2012-09-18 03:00업데이트 2012-09-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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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서울이나 지방 소도시에서 갖는 웰다잉(well-dying) 강의에는 여러 가지 질문이 쏟아진다. 죽음이라는 어두운 주제가 등장하다 보니 분위기는 다소 무겁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야기가 자신들의 문제로 느껴지면 참석자 모두들 눈을 반짝인다. 궁금증이 가득 찬 시선이 몰려온다. 첫 번째 질문이 터진 후에야 쑥스러워하던 표정이 풀어진다. 그들이 진짜 본심을 보이며 내게 다가올 때는 강의가 끝난 후 커피 타임에서다.

질문의 종착점은 내 아내에게로 돌아온다. 아내의 그 ‘종이딱지’(사전의료의향서)가 어떻게 쓰였는지, 그 서류에 요청한 것처럼 실제로 연명치료가 중단됐는지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이때마다 나는 늘 난감한 상황에 빠지곤 했다. 아내가 떠날 때의 모습을 그리기 싫어서였다. 묻는 사람들도 내 상처를 건드리려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궁금해한다. 나는 다 털어놓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악성 종양 수술 이후 상태가 더 악화되어 2년 전 여름 말기 상태로 넘어갔다. 집에서 고열에 시달려 응급실로 실려 다니기를 여러 차례.

응급실에 가면 전쟁터 야전 병원에서처럼 복도 바닥에 누워 있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어떤 때는 꼬박 이틀 동안을 그랬다. 누구나 보잘것없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 아내는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동물적 감각으로 느낀다. 환자의 이름을 확인하는 간호사의 느린 목소리, 레지던트가 가슴에 밀어 넣는 청진기의 이물감, 백혈구 수치의 위험도를 설명하는 응급실 주치의의 피로에 지친 얼굴을 뒤로하고 병원을 떠난다.

집에서 조리하는 게 낫다는 의사의 권고를 받을 때마다 아내는 이게 마지막 응급실 방문이 될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휠체어에서 차에 옮겨 탄 뒤 아내가 다시 꺼낸 말은 ‘내가 서류에 사인한 그대로 해줘요’였다. ‘내가 불치병에 시달리며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를 대비해 나의 가족과 나를 담당하는 의료진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로 시작되는 아내의 선언서를 기억하라는 것이었다.

불교도인 아내가 작은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경기 포천시의 호스피스 병동에 가자고 조른 것은 응급실 수난을 여러 차례 겪고 난 후였다. 아내가 아프기 훨씬 전부터 우리는 여러 차례 그곳에 들러 수녀들의 세상 이야기를 듣곤 했다.





사실 아내가 그곳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나는 호스피스 병동의 ‘호’자도 들먹이질 못했다. 너무 예민한 언어였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 말에 ‘꺼져 가는 인생의 종점’이라는 의미를 얹어 썼다.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비밀스럽고도 어두운 암호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내는 호스피스 병동의 평화와 사랑을 깊이 알고 있었다.

입원하던 날 아내는 인공호흡기 사용과 심폐소생술 시술을 거절하는 서류에 또 한 번 서명했다. 이곳에 있는 거의 모든 환자가 신용카드 입회원서를 작성할 때 그러듯 삶을 마무리하는 ‘안녕 카드’를 마주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거침없이 이름을 적었다.

카리타스 수녀는 어느 날 새벽, 병동 언저리 사찰에 있는 비구니 스님을 병실까지 모셔와 아내를 온종일 들뜨게 만들었다. 그 스님은 아내의 침대 앞 벽에 커다란 연꽃을 달아 놓았다. 병동의 모든 수녀가 그 연꽃을 소중히 여겼다. 종교를 넘어선 봉사였다.

노래 솜씨가 좋은 아내는 앞을 보지 못하거나 몸이 마비된 다른 말기 환자들의 병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황성옛터’에서부터 ‘칠갑산’, ‘사랑을 위하여’에 이르기까지 신청곡을 모두 소화하는 노래봉사를 하며 웃고 떠들었다. 밤에는 침대에 누워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더러 잘 지내라며 손을 잡았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는 못 견디게 집을 그리워했다. 전혀 내색하지 않았던 아내였다. 몸은 점점 말라 갔다. 아내에게 남아 있는 세월은 기껏해야 한 달이었다. 어느 날 원장수녀에게 아내를 퇴원시켜 집에서 간호하게 해 달라고 말했다.

서울 한 병원 의사의 왕진과 가정간호사의 도움으로 아내의 통증도 잘 조절되었다. 아내는 집에서 7개월을 더 지냈다. 아내의 모든 애장품은 눈을 감기 1주일 전에 이곳저곳에 기증되었다. 아내의 몸이 타들어 갈 때였다. 아내의 뜨거운 체온 때문에 주치의에게 전화하면 나에게 놀라지 말라고 당부했다. 스스로 연소하며 소멸하는 중이었다.

최철주 칼럼니스트최철주 칼럼니스트
의사가 권장한 대로 나는 아내의 편안한 임종을 위해 앰뷸런스를 부르지 않았다. 아내가 좋아하는 시를 낭송해 주었다. 그러고도 3일이 지나갔다. 내가 우유를 사러 간 사이 도우미 아줌마의 숨찬 목소리가 휴대전화에서 울렸다. 급히 달려온 아들에게 손목을 맡긴 채 아내는 눈을 감았다. 모든 건 순식간에 벌어졌다.

숨을 거둔 아내를 병원 응급실로 옮기면서 그동안 치료해 준 의사의 소견서와 아내가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 파일을 건넸다. 당직 여의사가 아내의 시신을 들여다본 후 옆 사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했다. “환자가 존엄사 선언을 하셨군요”라고 말하며 ‘병사(病死) 처리’ 하라고 전공의에게 지시했다.

만약 임종하기 직전에 아내를 응급실에 데려갔더라면 그의 영혼은 심폐소생술 등에 시달려 지금도 나를 끝없이 원망했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아내 베개에 놓여 있던 손수건을 다 적셨다.

최철주 칼럼니스트 choicj11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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