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생활 톡톡]“겨울엔 95일 동안 해가 안떠… 실내서 볼링-족구 경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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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공장서 제조법 배워 대원들 향수 달래주기도”

《 모처럼 매서운 겨울 추위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연중 빙설로 뒤덮인 남극에 비하면 포근한 편입니다. 남극에는 20개국의 기지 41개가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를 세웠죠. 추울 때는 세종기지가 영하 25도, 장보고기지는 영하 40도까지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대원들의 건강을 우려해 현지 근무기간은 1년으로 제한합니다. 매년 각각 17명의 월동대원을 뽑는데 경쟁률은 약 9 대 1입니다. 그토록 추운 극지에 왜 가려는 걸까요. 남극을 다녀온 사람들은 “남극 생활에도 낭만이 있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막 임기를 끝내고 지금 귀국 중인 월동대장을 비롯해 남극기지에서 근무한 사람들의 남극 생활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
위쪽부터 안인영 대장, 공창환, 조경훈, 김홍귀 대원.
위쪽부터 안인영 대장, 공창환, 조경훈, 김홍귀 대원.
“여성 과학자들의 롤 모델 되고 싶어요”

1991년 12월 28일, 서른다섯 살에 처음 남극 세종기지에 발을 디뎠습니다. 칠레에서 남극까지 ‘에레부스’라는 작은 배를 타고 이동했는데 5일이나 걸렸어요. 뱃멀미가 너무 심해 남극에 도착했을 때는 배가 홀쭉해져선 바지가 휙휙 돌아가더라고요. 당시엔 남극에 다녀온 사람이 200여 명밖에 안 됐어요. 지금까지도 2000명이 채 안 됩니다. 그중에 제가 있다는 사실이 늘 뿌듯해요.

이후 25년간 11번, 각각 40일 정도 연구원으로 남극에 머물렀습니다. 올해는 처음으로 기지대장을 맡았어요. 그러니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대원 17명이 함께 있다 보면 갈등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짐을 싣고 나르는 일, 유류탱크를 청소하는 일, 폐기물을 선적하는 일 같은 게 사소해 보이지만 여기서는 쉽지 않은 일이에요. 강추위 속에서 몇 시간을 일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민감할 수밖에 없지요.

대원들은 비효율적인 절차를 싫어해요. 그러니 역할을 분담하고 작업 순서를 잘 정하는 게 중요해요. 전체회의를 열어 각자의 전문분야와 기호를 고려해 역할을 조정하곤 합니다. 그래야 역할 없이 기다린다든지, 작업 순서가 명확하지 않아 갈팡질팡하는 일이 없으니까요.

그간 저는 ‘아시아 최초의 여성 월동대장’ ‘남극에 간 최초의 한국 여성’으로 주목을 받아왔어요. 육아나 가사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후배 여성 과학자들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되려고 노력한답니다.

어느덧 환갑이에요. 지난 1년은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기회였어요. 여기에서 관찰한 남극 환경의 변화, 남극 해양 생물들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자연과학 지침서를 내려고 합니다.

―안인영 세종기지 28차 월동대장(59·여)
“남극까지 다녀왔는데 뭘 못하겠어요”

대학교 3학년 때 고생물실험실에서 남극 시료를 처음 접했어요. 너무 신기해서 남극에 직접 가서 연구하고 싶더라고요. 석사 1학기를 마치고 곧장 남극 장보고기지로 달려갔지요.

남극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가끔 ‘기지로 복귀 바랍니다’ 하고 무전이 와요. 그럴 땐 빨리 들어가야 해요. ‘활강풍’이 불기 때문이지요. 산꼭대기에서 출발한 바람이 기지에 도착하는 데는 5분밖에 안 걸려요. 기지가 엄청 흔들려서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예요. 최고층인 통신 관제실에 있으면 진동이 더 잘 느껴져요. 그럴 땐 ‘내가 정말 남극에 있구나’ 싶죠.

한번은 장염에 걸렸는데 맹장염인 줄 알고 겁먹은 적이 있어요. 맹장염이면 수술해야 하는데 장보고기지는 겨울엔 환자 이송이 어려운 고립지대이거든요. 95일간 해가 뜨지 않는 극야 때에는 외부활동도 제한돼요. 그래도 나름대로 즐기는 방법은 있어요. 볼링, 족구 등 실내스포츠 위주로 ‘남극 올림픽’을 열어 대원 모두가 신나게 놀았어요. 오로라도 실컷 봤어요. 오로라를 찍은 사진만 1만5000장 정도인데, 온라인으로 극지 사진전에 출품해 우수상도 받았어요.

보름 전 한국에 도착했는데 한 대학에서 남극 생활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됐어요. 제 키가 192cm인데 ‘남극 다녀온 큰 사람’으로 유명해졌어요. 남들이 쉽게 갈 수 없는 남극을 다녀오고 나니 ‘이제 내가 못할 것은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공창환 장보고기지 2차 월동대 지구물리연구대원(28·지구물리학 전공 대학원생)


“대원들의 건강은 제가 책임졌어요”


남극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대처가 쉽지 않아요. 의사가 기지당 한 명뿐이거든요. 한국처럼 3분 만에 구급차가 달려오는 것도 아니고, 협진을 의뢰하기 힘들죠. 다행히 제가 월동할 땐 응급환자가 없었어요. 대원들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줬답니다. 남극에 가기 전 원주교도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했어요.

남극의 겨울은 밤이 20시간이에요. 불면증을 호소하는 대원이 많았어요. 진료와 더불어 수면 관련 연구를 위해 대원들의 머리카락과 침을 채취하기도 했죠. 기지에서 두 번째 막내였지만 진료하는 의무실 안에선 철저히 ‘의사’가 돼야 했어요. 평소 ‘형’ ‘동생’ 하고 편하게 지내던 동료들에게도 단호하게 처방을 내려야 하거든요. 다행히 모두 서로를 존중해서 큰 불편함은 없었어요.

막걸리를 만드는 것도 제 일이었어요. 대원들과 즐겁게 생활하려고 미리 막걸리 공장에 견학을 가서 제조법을 배워뒀거든요. 누룩도 넉넉히 챙겨갔어요. 그걸로 한 달에 두 번씩 막걸리를 직접 빚었어요. 한 번에 40∼50L씩 만들었는데 인기가 좋았어요. 요리 담당 대원의 주특기였던 김치 수육을 곁들이면 다들 ‘크아’ 하면서 행복해했어요.

20대 막바지에 남극 생활을 한 건 굉장한 행운이었습니다. 고립된 곳에서 외로움도 느꼈지만, 남극의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며 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극지의학과 연관된 응급의학과로 전공을 굳히게 된 계기도 됐죠. 남극에서 돌아온 지 벌써 3년이 지났네요. 지금은 절 기다려준 여자친구와 결혼해 귀여운 아들도 낳았어요. 남극에서 페이스타임(애플 영상통화)을 켜두던 연애시절이 생각나네요. 전 일할 때도 내내 페이스타임을 켜뒀고, 여자친구는 침대에 모니터를 걸어놓고 잠들곤 했죠. 멀리 있어도 항상 함께하는 느낌이었답니다.

―조경훈 2012년 남극세종기지 25차 월동대 의료담당(31·고려대 구로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2년 차)
“남극은 내게 고향 같은 곳”

친구들은 제가 남극에 간다고 하면 ‘고향 잘 다녀와’라고 합니다. 2000년부터 벌써 여섯 번을 갔거든요. 남극에 가기 전엔 인천항에서 중장비 운전을 했습니다. 1999년 5월 우연히 신문에서 세종기지 월동대원 모집광고를 봤습니다. 남극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도전정신이 막 일었죠. 이후 하얀 대자연과 푸른 하늘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려 남극을 계속 오가는 중입니다.

남극에서 저는 굴착기, 지게차 등으로 기지 보수 공사에 필요한 자재들을 옮깁니다. 악천후에 대비해 항상 기계를 정비합니다. 크레인으로 고무보트를 바다 위에 띄우기도 하죠.

17차 월동(2004년)은 제게 가장 힘든 해였습니다. 그때 사고로 동료(고 전대규 대원)를 잃었거든요. 당시 조난당한 동료 3명을 구하기 위해 급히 고무보트를 몰고 나갔어요. 순간 풍랑이 덮치더니 보트가 뒤집혔는데, 동료가 바다로 떨어졌어요. 그는 끝까지 밧줄 대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수신기를 붙잡고 있었어요. 거센 눈보라로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바다 위에서 위성신호를 잡아 동료들에게 방향을 가르쳐 주려 했던 거예요. 그런 그를 보내고 우리만 살았다는 생각에 정말 괴로웠습니다. 그를 잊지 못해 남극을 계속 찾게 되는 건 아닐까요.

처음 월동했던 15년 전과 지금, 남극 생활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엔 전화도 한 달에 한 번밖에 못하고, 편지도 우편으로 받았습니다. 대원들이 식당에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시간도 많았죠. 통신 환경이 좋아지니 요즘엔 다들 자기 방으로 들어가요. 그래도 저는 편지세대라 그런지 이메일보다 손편지가 소중해요. 호주머니에 편지를 넣고 쉬는 시간이면 보고 또 보곤 했어요.

사실 40대 가장이 자주 집을 비운다는 건 가족에게 미안한 일입니다. 딸아이가 두 살일 때 처음 남극에 왔거든요. 아빠가 필요한 시기였을 텐데 중간 중간 집을 자주 비웠네요. 홀로 있을 아내에게도 미안하죠. 그래도 요즘 딸아이는 친구들에게 아빠 자랑도 하고 본인도 남극에 오고 싶어 한답니다.

―김홍귀 장보고기지 1차 월동대 중장비 담당대원(43)·3차 월동대 하계 지원

오피니언팀 종합·안나 인턴기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졸업
#남극#겨울#세종기지#장보고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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