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단종(11) 카다피(27) 그리고 김정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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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9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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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실장
황호택 논설실장
고종은 21세 때 한 살 위인 명성황후의 도움을 받아 대원군의 섭정을 밀어내고 왕권을 확립했다. 군주국에서 제왕의 나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단종은 11세에 등극해 14세 때 38세이던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좌를 빼앗겼다. 세종은 21세에, 영조는 30세에 왕위에 올랐다.

북한은 3대 세습의 왕조국가다. 북한은 김정은의 나이를 30세라고 알리고 있으나 여러 증언을 종합해 보면 1983년생(돼지띠)이다. 29세의 나이로 민주국가에서 선출직 대통령이나 총리를 하기는 어렵지만 독재국가에서 군권(軍權)을 장악해 국가를 통치해 나가는 데는 무리가 없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27세에 쿠데타로 집권해 42년 동안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은 2004년부터 최근까지 일본 도쿄신문의 고미 요지 편집위원과 100여 회 e메일 대화를 주고받았다. 김정남은 e메일에서 “할아버지(김일성)를 많이 닮았다는 사실만으로 주민에게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지 걱정이 된다. 외모만 닮은 김정은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며 기존 파워엘리트들이 권력을 주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을 집단지도체제의 실권 없는 간판 정도로 보는 인식이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김정남의 북한 분석은 때론 예리하지만 김정은에 대해서는 이복형제의 경쟁심리가 작용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인상을 준다. 김정남이 해외로 떠도는 동안 김정은은 아버지로부터 권력기관을 이용하고 측근들을 조종하는 제왕학을 집중적으로 전수받았을 것이다.

해외 유학파의 개혁개방 미지수

왕조시대에 부왕(父王)이 반석 같은 나라를 물려줬어도 아들의 역량이 모자라면 유지할 수 없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다. 김정은은 ‘중상(中上)’ 정도의 지도능력을 갖고 있고 국가 현안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정보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김정은은 새해 들어 군부대를 여섯 번 시찰하면서 김정일의 선군(先軍)정치를 이어갈 것임을 과시했다. 김정은의 군부대 시찰에는 김정일의 장례기간 중 인민군 대장이 된 장성택이 자주 수행하고 있다. 장성택은 북한에서 김정일 말고는 유일하게 인맥을 관리한 사람이다. 군맥(軍脈)도 두껍다. 그의 둘째 형과 셋째 형도 인민군 차수와 중장을 지냈다.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는 김일성대 경제학부 동기생이던 장성택을 결혼 상대로 찍어 벼락출세를 시켜 주었다. 인품이 고매한 사람들이 아니면 부부간에도 권력이 작용한다. 김정일의 호화 파티에서 술 취한 김경희가 반말로 “야, 장성택” 또는 “어이, 장 부장”이라고 부르며 술을 권하면 장은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복수의 목격자가 증언한다.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는 장성택과 김정은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지면 조카 편을 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66세 동갑인 장성택 김경희 부부 사이에 후사가 없는 점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둘 사이에 난 딸(금송)은 2006년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 자살했다.

장성택은 권력의 냉혹함과 화려함을 다 맛본 인물이다. 장성택은 측근들과 호화 파티를 벌이다 김정일의 눈 밖에 나 강선제강소로 쫓겨가 일반 노동자들과 똑같이 노역을 한 적이 있다. 장성택을 가까이서 모신 탈북자는 “장의 다리에 수십 군데 화상을 입은 흉터가 남아 있다”고 증언했다. 장성택이 제강소에서 쇳물을 나르다 넘어져 생긴 상처다. 제강소의 지옥에서 그를 구해준 것은 성혜림(김정남의 어머니)과 김경희였다.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수양대군을 흉내 내 위험한 도박을 벌이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백두의 혈통’으로 대를 잇는 수령제 국가에서 곁가지가 줄기를 대체할 수도 없다.

2인자 장성택 섭정의 한계

김정은은 스위스 베른 인근의 공립학교에서 4년 동안 공부했다. 그의 유학과 해외견문을 들어 개혁개방으로 나아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다. 하지만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해외 경험이 반드시 개혁개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1918년부터 6년 동안 유학했던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사후 집권해 중국의 개혁개방을 선도했다. 반면에 1949∼53년 파리에 유학했던 캄보디아의 폴 포트는 후일 100만 명을 죽인 킬링필드의 주역이 됐다. 아버지가 물려준 정권을 지탱하기 위해 시위군중 5000여 명을 학살한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영국 유학파다.

김정은이 중국식의 개혁개방을 놓고 고민하더라도 체제 위협 때문에 쉽게 결단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다. 김정남은 “북에서 후계구도가 실패하면 군이 실권을 쥘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정은에겐 군을 확실하게 장악해 권력기반을 다지는 일이 가장 급할 것이다. 그러나 개혁개방을 망설일수록 주민의 고통이 커지고 체제 불안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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