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산책]그래도 서울은 살만하다

  • 입력 1997년 1월 11일 19시 55분


지난 가을이었다. 앞집 할머니가 어쩐 일인지 요즘 눈에 띄지 않는다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할머니의 모습 때문이기보다는 골목길에 쌓이는 나뭇잎 때문이었다. 언제나 아침 6시 무렵이면 이 할머니가 골목길을 쓰는 소리가 들리곤 했었다. ▼ 골목길 쓸던 할머니 ▼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집에 들어오다가 이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 영안실로 찾아가면서 떠오른 것의 하나도 나뭇잎이었다. 이제 누가 골목길을 쓰나 하는. 도시생활의 척박함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런 걸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지 십여년이 넘는다. 앞뒷집이 음식을 나눠먹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화분에 심어 기른 풋고추까지 서로 나누며 살아온 골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온 도시, 서울살이였다. 그런데 한 경제연구소의 비교지표가 새삼스레 아픈 곳을 찌르 듯 마음에 와 닿는다. 세계 16개 나라 30개 도시의 비교에서 서울은 종합경쟁력 19위에 삶의 질은 맨 꼴찌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살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우리보다 한결 지방색이 더한 나라가 일본이어선지 고향이 어디냐는 말을 자주 들어야 했다. 그때 나는 우스개삼아 이런 대답을 하곤 했다. 『한국 전직 대통령 한 사람이 지금 깊은 산 속 절간에 가 있는 걸 아느냐? 바로 그 부근이 내가 태어난 곳이다』 백담사행의 대국민 사과문 발표를 생중계한 것이 일본의 NHK였으니 웬만한 일본인이면 다들그 뉴스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울 어디에서 살고 있느냐고 물을 때면 나는 또 대답하곤 했다.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공식 마라톤 코스 5㎞가 되는 지점에 내 집이 있다고. 백담사 부근 그 깊은 산에서 태어나 올림픽 스타디움 5㎞지점까지 멀리도 온 세월, 내 삶의 궤적이다. 사느라고 살아왔는데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이 서울은 세계의 30개 도시 가운데 꼴찌란 말인가. 문득 지난해 봄에 있었던 한 연주회가 떠오른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소프라노 조수미가 있던 그 자리, 수원 야외음악당 개관기념 경축음악회였다. 젊은 엄마는 아직 뿌리가 덜 내린 잔디에 앉아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채우며 음악을 들었다. 남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따라부르는 아내도 있었다. 그 저녁을 음악과 같이 한 수원시민들이 조금은 목메어 불렀던 「코리아 판타지」의 마지막 부분은, 애국가가 수원시향의 선율과 함께 감동으로 여무는 순간이었다. 야외음악당이 세워진 그 자리는 한때 축구장 건립이 논의되었다고 했다. 정책관계자들의 안목과 한 기업의 뜻깊은 배려가 그렇게 아름다운 문화공간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산에 오르지 않고, 바다를 보지 않고도 사람들은 살아갈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삶에서 무엇인가 하나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음악이 없이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평생 산을 오르지도, 바닷가를 거닐어 보지도 못한 사람일 뿐이다. ▼ 간직하고 싶은 믿음 ▼ 올 겨울, 눈이 많이 내린다. 그러나 이제 우리 골목에서는 아무도 집앞의 눈을 쓸지 않는다. 아니 눈을 쓸 수가 없다. 아침부터 밤까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차들이 집앞 골목에 버티고 서 있으니 눈을 쓸 공간마저 없어진 셈이다. 도시가 아니라 공사판의 한 가운데에서 살고 있는 것같은 서울,그래도서울이살만한 곳이라는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살만한 곳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서울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할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한 수 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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