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평가하는 학생들, 갑질 대응나선 배달기사… ‘안티꼰대’ 뜬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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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청년, 꼰대를 말하다]
<2> 할말은 하는 안티꼰대 정신

동아일보와 협업한 파워펄프걸스 팀(박세미·22, 이예림·21, 정재연 씨·21·이상 연세대)은 우산을 함께 쓴 꼰대와 
청년의 모습을 통해 조언의 표현 방식만 달리하면 얼마든지 화합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금꼰’ 포스터에 담았다. 꼰대들이 쉽게 
건네지만 청년에게는 달갑지 않은 조언을 작품 속 떨어지는 비로 표현했다. 동아일보가 청년(15∼34세) 2020명에게 물어본 결과
 청년들은 여러 꼰대질 가운데 ‘잦은 훈수와 충고’를 가장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와 협업한 파워펄프걸스 팀(박세미·22, 이예림·21, 정재연 씨·21·이상 연세대)은 우산을 함께 쓴 꼰대와 청년의 모습을 통해 조언의 표현 방식만 달리하면 얼마든지 화합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금꼰’ 포스터에 담았다. 꼰대들이 쉽게 건네지만 청년에게는 달갑지 않은 조언을 작품 속 떨어지는 비로 표현했다. 동아일보가 청년(15∼34세) 2020명에게 물어본 결과 청년들은 여러 꼰대질 가운데 ‘잦은 훈수와 충고’를 가장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길거리 에어팟(애플의 무선 이어폰) 금지.’

지난해 10월 지방의 한 대학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에브리타임은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익명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앱)이다. 글을 올린 학생은 “길거리에서 에어팟을 끼고 다니면 (선배들이) 그 학번 전체 집합”이라고 고발한 것이다.

이처럼 ‘꼰대질’은 기성세대 또는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똥군기’로 불리는 일부 관행은 대학가의 대표적인 꼰대 문화다. 에브리타임은 이런 대학 내 꼰대질의 고발 창구다. 해당 조직의 구성원인 걸 인증받아야 이용할 수 있어 ‘내부 고발’이 가능하다.

사실 꼰대 문화에 대한 반감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까지 주목받게 된 것은 청년들이 본격적으로 ‘노(NO)’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생각을 중요하게 여기고, 조직보다 개인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모이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에브리타임처럼 이들의 목소리를 전할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꼰대 문화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 안티 꼰대, 청년을 움직이다

지난해 5월 ‘라이더유니온’이 출범했다. 청년이 주축이 돼 구성된 배달 대행 기사들의 노조다. 일부 소비자의 꼰대질, 업주의 갑질에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였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같은 이른바 거대 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 중이다. 처음 노동계 안팎의 시선은 회의적이었다. 개인사업자 형태로 일하는 이들의 조직화가 어렵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각을 비웃듯 200명으로 조직을 불렸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배달 노동자들은 꼰대 문화를 가장 가까이서 느낀다”며 “상대가 약하거나 만만해 보이면 권력을 행사하고 차별에 눈감는 것이 꼰대 문화의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2010년 출범한 국내 첫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표출하기 위해 결성됐다. 엘리트 스포츠 분야의 무조건적인 성과주의를 비판하며 결성된 ‘젊은빙상인연대’도 안티 꼰대 정신이 투영된 조직으로 꼽힌다. 이들은 “젊을 땐 그런 거다”, “싸워봐야 너만 피해 본다”, “우리 땐 더 심했다”란 기존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는 “과거에는 문제가 있어도 금메달만 많이 따면 금방 덮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도 중시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 이제 우리가 평가한다


“교수님이 회식이랑 노는 걸 너무 좋아하세요, 학생들도 좋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다른 연구실 학생에게 ‘자네 우리 학부 출신 아니지? 그러니까 그렇지’라고 말하면 어떡하나요.”

교수 평가 웹사이트 ‘김박사넷’에 올라온 대학원생들의 글이다. 김박사넷은 2018년 등장했다. 교수들에 대한 대학원생 및 졸업생의 평가가 올라온다. ‘실적은 국내 원톱, 그러나 (학생) 케어는 부족’, ‘그래도 과학에 대한 열정은 배울 만’, ‘관심 있는 프로젝트에만 몰두, 다른 건 방치’. 교수 입장에서는 뜨끔할 내용이 많다. 이곳만큼은 학생이 평가의 객체가 아닌 주체인 것이다. 이제는 평가뿐 아니라 교수들의 꼰대 문화에 대한 고발 창구로도 활용된다. 안티 꼰대 움직임이 새로운 플랫폼을 만나면서 활성화된 것이다.

유일혁 김박사넷 대표는 “월평균 13만 명 정도가 사이트를 방문하고 있다”며 “자신에 대한 불만이 담긴 한 줄 평을 보고 연구실 분위기를 개선한 교수가 있을 정도로 이젠 교수 사회가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티 꼰대 정신의 특징 중 하나는 기성세대가 강조하는 ‘인생 정답’을 거부하는 것이다. 학교나 직장에서 흔히 듣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이렇게만 하면 성공이야”라는 조언에 무조건 수긍하지 않는다. ‘퇴준생’(퇴사준비생), ‘이퇴백’(이십대에 퇴직해서 백수) 같은 신조어가 등장한 이유다.


○ 펭수, 약치기…현실 공감 콘텐츠 인기

안티 꼰대 정신은 대중문화까지 주도하고 있다. 최근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는 EBS 캐릭터 펭수는 안티 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펭수는 EBS 연습생 신분이지만 사장의 이름을 거침없이 부르고, 외교부 장관을 만나서는 “여기 대빵이 누구냐”고 당당히 묻는다.

특히 ‘일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변신해서는 “우리가 먼저 건강해야 국민들도 건강한 것”이라며 직원들에게 “퇴근해!”를 외쳤다. 펭수의 이런 모습은 직장 내 꼰대 문화에 염증을 느낀 청년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펭수는 안티 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개설 9개월 만에 160만 명을 넘어섰다.

양경수 작가(필명 양치기)는 2016년 만화 ‘약치기’ 연재를 시작했다. 직장 내 꼰대 문화에 짓눌린 청년들의 마음을 한 컷에 담아냈다. 맡은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는데도 정당한 보상 대신 정신적 보람이나 주인의식만 강조하는 일부 직장 문화에 대해 ‘보람 따윈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경영자의 마인드로 열심히 일할 테니 경영자의 월급을 주세요’ 같은 말을 던진다.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를 분석한 ‘요즘것들’의 저자 허두영 데이비드스톤 대표는 “밀레니얼 세대가 좋아하는 콘텐츠에는 선배 세대를 무조건 본받기보다 다른 길을 가려는 반골 기질이 내포돼 있다”며 “선배 세대에 대한 아쉬움이 들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안티 꼰대, 해외에서도 뜬다

“오케이, 부머(Ok, boomer)!”

지난해 11월 5일 뉴질랜드의회 연단에 선 클로에 스와브릭 의원(25·여)이 의원석을 바라보며 외쳤다. 부머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6∼1965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를 뜻하는 은어다. 스와브릭 의원이 기후변화를 외면해 온 기성 정치인을 비판하던 중 일부 의원의 야유를 받아친 것이다. ‘알았으니 이제 그만하라’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됐네요, 꼰대!”

동영상이 유튜브로 공개되며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윗세대를 향한 Z세대(1995년 이후 태어난 세대)의 선전포고”라고 규정했다.

※당신이 만난 꼰대에 관한 경험담을 동아일보 특별취재팀 이메일(kkondae@donga.com)로 보내주세요. 꼰대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의, 부탁, 제언 등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특별취재팀(가나다순)
김소영 김수연 남건우 신규진 유성열 이윤태 조윤경 한성희 기자
#꼰대#안티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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