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1.19 쇼크]<2>출산 피하는 사회 vs 출산 권하는 사회

  • 입력 2005년 6월 29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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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아이 수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줄어드는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회원국 중 가장 긴 2390시간(2003년 기준)이다. 2002년 합계출산율이 1.17명으로 한국처럼 출산율이 급속히 줄어든 체코의 연평균 근로시간도 한국 다음으로 긴 1972시간이다. 반면 2003년 유럽연합(EU) 전체 인구 증가분의 4분의 3을 차지할 만큼 빠른 속도로 아이가 늘어나는 프랑스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한국의 거의 절반인 1431시간이다. 출산율 회복에 성공한 스웨덴의 근로시간도 1564시간으로 ‘과로(過勞)’와는 거리가 멀다.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출산 피하는 사회▼

대기업 재무팀에서 근무하는 김경옥(金京玉·35) 씨는 둘째를 낳기 위해 부인과 7년간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이다 얼마 전 ‘아이 하나에 모든 걸 집중하기로’ 마음을 정리했다.

“둘째를 원하지만 솔직히 제대로 키울 자신은 없어요. 거의 매일 밤 12시 넘어 들어가고 새벽에 나오는데…. 아이한테나 아내한테나 못할 짓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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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처절할 정도의 과로 사회다. 한국 남성은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아빠들이다. 게다가 한국 남성들은 생계부양자로서의 부담, 회사 내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이중 삼중 부담에 짓눌려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 놓여 있다.

한국의 40대 남성 사망률이 인구 1000명당 4.2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3.4명)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은 한국 가장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임을 잘 보여 준다. 과로 사회의 스트레스는 노동시장에 진입한 여성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최재천(崔在天)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지나친 ‘소모품 인간 사회’인 한국사회에서 출산 기피는 여성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라 엄청난 양육비 부담과 지나친 희생을 염려해 부부가 함께 내리는 이성적인 결정”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못지않은 ‘회사형 인간’의 나라인 일본도 ‘조직 우선’의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본은 1994년부터 10년간 ‘에인절플랜’ ‘뉴에인절플랜’ 등의 정책을 통해 보육시설을 대폭 늘리고 육아휴직 제도를 정비했지만 출산율은 회복되지 않았다.

“30대 남성 4명 중 1명이 주 60시간 일한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저출산을 막을 수 없다.”(야가미 아쓰오·八神敦雄 일본 후생노동성 고용균등 아동가정국 기획관)

이에 따라 일본은 지난해부터 남성을 일찍 가정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뉴뉴에인절플랜’을 시행하고 있다. 300인 이상의 기업에 다니는 아빠들이 육아에 참여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거나 단축노동이 가능하도록 제도화한 것.

한국에서도 7월 1일부터 주5일 근무제가 확대 시행돼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 가족 간 친밀감이 증대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가족자원경영학회가 2002년 금융권과 일부 기업체에서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된 직후 직원과 배우자 182쌍을 조사한 결과 가장 큰 변화로 37%가 ‘가족관계의 개선’을 꼽았다. 금실이 좋아진 덕분에 남편의 19.1%, 아내의 18.7%는 성관계 횟수가 증가했다고 대답했다.

▼출산 권하는 사회▼

높은 출산율을 자랑하는 서구 선진국들은 모두 ‘가족 중심사회’라는 특징이 있다. 오후 6시면 상점 주인까지 문을 닫고 가정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의 경제부 기자인 도미니크 갈루아(48) 씨도 오후 6시면 어김없이 집에 간다. 초등학교 교사로 7시 반경 퇴근하는 아내 이사벨라(48) 씨보다 먼저 도착해 4명의 아이들을 돌본다. 르몽드가 석간신문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는 “저녁 약속은 거의 하지 않으며 주로 점심시간을 활용해 사람들을 만난다”고 했다.

프랑스의 직장 문화에서 두드러진 점 중 하나는 육아문제에 관한 한 모든 게 이해된다는 것. 이사벨라 씨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고 하면 누구도 문제 삼지 않고 받아들인다”고 소개했다. 이는 대통령비서부터 경찰공무원까지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스웨덴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인 앤 크리스틴 얀스(43) 씨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4, 5시경 퇴근한다. 근무시간 중 개인적인 일을 보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다.

그러나 아이를 돌보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것은 누구나 용인한다. 아이가 12세가 될 때까지 근무시간의 25%까지 줄일 수 있으며, 직장에 따라 재택근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기도 한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시내에는 지하철과 버스마다 유모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확보돼 있고 유모차를 실으려면 승객들이 너나없이 일어나 자연스럽게 돕는다. 스톡홀름 시에서 버스를 하루에 두 번 이용하면 한 달 요금이 약 600크로나(약 7만9440원)인데 유모차를 끌고 타면 공짜다. 일렉트로룩스사에 근무하면서 아들(4)과 딸(2)을 키우는 마가레타 핀스테드 묄러(31·여) 씨는 “스웨덴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출산과 양육 과정을 ‘성인 훈련’으로 본다”며 “이런 경험이 사회생활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스톡홀름=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저출산 시리즈 자문위원▼

△김승권(金勝權) 보건사회연구원 사회정책연구실장 △김연(金鍊·인구학) 미국 유타주립대 교수

△남인순(南仁順)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박수미(朴秀美)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 △박은태(朴恩台) 인구문제연구소 이사장

△박하정(朴夏政) 보건복지부 인구가정심의관 △이순형(李順炯·아동학) 서울대 교수 △이지평(李地平)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장지연(張芝延) 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조영태(曺永台·인구학) 서울대 교수 △최재천(崔在天·생물학) 서울대 교수

△프랑수아 에랑 프랑스 국립인구문제연구소장 △즈야 노리코(津谷典子·경제학) 일본 게이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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