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 나선 서울大 “진압이라니… 우리가 범죄자냐”

  • 입력 2005년 7월 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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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불변”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7일 오전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문 채 서울대 관악캠퍼스 내 본관 집무실로 걸어가고 있다. 신원건  기자
“입장불변”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7일 오전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문 채 서울대 관악캠퍼스 내 본관 집무실로 걸어가고 있다. 신원건 기자
서울대의 2008학년도 입시안에 대해 열린우리당이 본고사로 규정하고 총공세를 취하고 있지만 정운찬(鄭雲燦) 총장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

서울대는 입시안에 대한 국민의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특수목적고 출신이 유리하다는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논술, 오해하고 있다”=정 총장은 7일 기자회견에서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지침을 주려고 발표한 2008학년도 입시안이 오히려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유감스럽다. 정확히 알리지 못해 오해가 생긴 탓”이라며 답답한 심정을 피력했다.

그러나 정 총장은 “대입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며 “통합교과형 논술은 정시모집에서 잠재력이 높은 학생을 뽑기 위해 종합적 창의력을 평가하려고 강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가 도입하려는 논술이 본고사라는 객관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여론몰이를 당하는 데 대해 억울하다는 주장이다. 교육부가 처음에는 “서울대 입시안이 바람직하다”고까지 하고서 이제 와서 문제를 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보하라”
노무현 대통령이 7일 오전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 29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양복 상의를 벗고 있다. 석동률 기자

이종섭(李鍾燮) 입학관리본부장은 “논술고사 방침을 내놓은 것은 고1 학생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인데 ‘내신’이 아닌 ‘논술고사’를 문제 삼는 것은 서울대의 기본 방향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목고에 유리하지 않다”=서울대는 국영수 위주의 지필고사로 논술을 출제하지 않을 것이며 교육부와 충분히 협의해 문제 유형을 개발할 것임을 강조했다.

특목고 출신이 유리하다는 주장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2005학년도 2학기 수시 특기자 전형에서도 합격자 413명 중 일반고 출신은 215명이고 과학고 114명, 외국어고 24명 등으로 특목고가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정시모집에서도 응시자 대비 합격자 비율은 일반고가 1943명(82.7%)으로 가장 높았고 외고는 172명(7.3%), 과학고는 28명(1.2%)에 그쳤다.

이 본부장은 “특기자는 특정 학과에 한정되기 때문에 일반고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며 “통합교과형 논술은 수능의 통합형 교과 출제 방침과 다르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고 독서토론을 충분히 하면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수협의회 나서나=여당의 한 의원이 당정협의에서 “서울대를 초동 진압해야 한다”고 언급한 데 대해 서울대 교수들은 “우리가 무슨 범죄집단이냐”며 격앙된 분위기다.

서울대교수협의회에는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교수들의 전화가 잇따르자 8일 긴급 회의를 갖기로 했다.

김광웅(金光雄) 평의회 부의장은 “정부가 국립대에 재정 지원을 한다고 어떤 반론이나 소신도 펼 수 없게 강제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며 “곧 열릴 평의원회에서 정부와 대학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단체 반응=김진표(金振杓) 교육부총리와 간담회를 가진 학부모 시민단체 대표들은 한목소리로 서울대 입시안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강소연 회장은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을 일반고에서 준비할 수 있는지 염려된다”며 “통합교과형 논술의 실체를 빨리 밝혀 달라”고 촉구했다.

참교육학부모회 박경양 회장도 “교육부가 서울대 입시안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응한 잘못이 있다”며 “서울대 입시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교육정책은 신뢰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비겁한 서울대…”홍보처장까지 나선 ‘서울대 때리기’▼

2008학년도 입시안을 놓고 정부와 서울대가 정면 충돌하고 있는 가운데 김창호(金蒼浩 ·사진) 국정홍보처장이 “서울대는 비겁하다”고 맹비난했다.

김 처장은 6일 “서울대의 2008학년도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는 논술로 본고사를 부활하려는 것이며 이는 비겁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 처장은 취임 100일을 기념해 이날 저녁 시내 음식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이 서울대의 입시안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같이 답변했다.

김 처장은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고사 도입 계획을 조목조목 비판했으며 이때도 “서울대는 비겁하다”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썼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식사를 겸한 자리였고 참석자들은 ‘폭탄주’를 한두 잔씩 마셨으나 아무도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

김 처장은 “서울대가 본고사를 실시할 때에는 전체 논술점수 비중이 52점인데도 가장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 간 차이를 5점 정도밖에 주지 않아 변별력이 없게 하고는 이제 와서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서울대가 대학원에 사람이 몰리지 않는 등 연구기능이 취약한데도 이를 개선하려 하지 않고 본고사로 우수학생만 선발하려 든다 △국립대면서 정부 정책을 따르지 않고 사립대처럼 가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김 처장은 “한마디로 서울대의 행태는 서울 강남의 일부 특권층에 기대어 뭘 해보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내가 서울대 출신이라 더 잘 비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발언이 물의를 빚자 김 처장은 7일 기자실을 찾아 “6일 발언은 국정홍보처장이 아닌 논술전문가 자격으로 한 것”이라며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서울대를 손보려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 처장은 “서울대가 비겁하다는 발언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서울대 측의 반론이 있다면 공개적으로 토론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대가 1994년 본고사를 실시하면서 논술점수의 편차를 작게 했다는 김 처장의 주장에 대해 입시전문가들은 “당시 논술은 본고사 국어과목의 일부로 단순서술형 문제가 출제됐으며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지금처럼 등급제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김 처장은 중앙일보 학술전문기자 출신으로 기자 재직 시절 ‘논술길잡이’ 칼럼을 신문에 연재했으며 논술 관련 서적을 출판하기도 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본고사 금지 법제화 가능할까▼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2008학년도 대입에서 본고사가 부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교등급제와 주요 과목 위주의 지필형 본고사, 기여입학제 등 이른바 ‘3불(不)정책’을 법제화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3불정책 중 기여입학제와 고교등급제 금지는 균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에 비춰볼 때 과도한 제한이라고 보기 어렵다.

문제는 본고사다. 현재 고등교육법 시행령에는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논술고사 이외의 필답고사를 시행하는 경우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응하지 않으면 연구조성비 지급 중단 등 필요한 재정적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 같은 내용을 법률 조항에 명시하면서 본고사 금지와 함께 제재조치를 분명히 하려는 것이다.

헌법 22조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해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또 헌법 31조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사 금지로 인한 학생선발권 제한이 대학의 자율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법제화가 가능하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의 한 판사는 “헌법이 대학의 자율성을 법으로 위임하고 있다고 해서 법률로 모든 것을 규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법률은 어디까지나 헌법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동당 최순영(崔順永) 의원이 5월 발의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에는 △위반 대학에 대한 교육부 장관의 시정명령 강화 △고교등급제와 기여입학제에 의해 선발된 학생의 입학 무효 △본고사를 실시하는 대학의 장은 1년 이하의 징역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홍성철 기자 sungchul@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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