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보고서 ‘빨리 늙는 한국’ 경고

  • 입력 2005년 1월 9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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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고령화와 고용정책’에 관한 보고서에서 고령화 사회에 걸맞지 않은 한국의 각종 경제사회적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시장 상황이나 고용주의 태도, 정부 대책, 기업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열악한 여건에 처해 있다는 게 요지. 보고서는 “한국이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임금 및 고용 시스템을 바꾸고 캠페인 등을 통한 인식전환과 아울러 근무환경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안했다.》

▽‘50년 안에 가장 늙은 나라로’=한국의 인구학적인 고령화 속도는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2000년 한국의 20∼64세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11%로 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 터키에 이어 가장 낮은 수준. 그러나 이 수치는 2050년엔 무려 67%로 상승해 일본, 이탈리아, 그리스와 함께 ‘노인 부양비율’이 최고치에 이를 것으로 이 보고서는 전망했다.

또 2050년에는 경제활동연령층 1.2명이 은퇴자 1명을 부양해야 한다. 2020년까지는 다른 OECD 국가들보다 경제활동인구가 더 빠르게 증가하겠지만 2020년부터 근로인구의 갑작스러운 감소가 예측되기 때문.

이 보고서는 “한국의 인구학적 변화는 경제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충격을 줄 것”이라며 “이런 충격을 상쇄할 방법은 고령자들이 일자리를 갖는 것뿐”이라고 진단했다.

▽열악한 고령자 고용 현실=이처럼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가 불가피해졌지만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은 고령자들에게 매우 척박하다. 그리고 이는 고령자들의 노동 의욕을 꺾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한국 고령자의 취업률은 매우 양호하다. 2002년 50∼64세의 취업률은 OECD 국가 중 10위. 특히 65∼74세의 취업률은 멕시코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일자리의 질(質).

한국 고령자들은 대부분 농·광업, 부동산업 등 단순직종에 종사한다. 고령자들이 종업원 300인 이상의 대규모 회사에 종사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며 그나마 대부분 임시직이나 일용직으로 근무한다. 또 60세 이상의 60%가량은 평균 근로자 연봉의 3분의 2도 안되는 낮은 임금을 받는다.

전통적으로 평생직장의 개념이 강한 한국이지만 유독 고령자에게는 고용불안마저 심각하다. 50∼54세의 직장인이 5년 뒤에도 같은 직장에 근무하고 있을 가능성은 3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

보고서는 “한국은 퇴직 연령이 55세 전후로 매우 낮은 편인 데다 재취업 이후에도 소득이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의 고령자 기피=보고서는 “한국 기업이 근로자의 조기퇴직을 유도하는 것은 고령화 사회에 맞지 않는 임금 및 고용 시스템과 연령차별적 문화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능력·직무 중심이 아닌 연공 중심의 급여와 오래 근무할수록 쌓이는 퇴직금제도로 인해 기업이 ‘생산성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든다’고 판단해 고령자를 부담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

실제 OECD 국가의 연령별 임금 인상률을 비교한 결과 50세까지 연령에 따른 임금 인상률의 경우 한국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기업의 구인광고에 연령 제한이 버젓이 등장하고 ‘사오정(45세 정년)’ 등 연령에 따른 퇴직이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직업교육 참여율 꼴찌=직장인, 실업자에 대한 직업교육이나 기타 평생교육 시스템도 현저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한국 근로자의 직업관련 교육 참여 비율은 고령자가 10% 미만, 장년층이 16%로 극히 낮은 편”이라며 “훈련 기회를 늘리고 적절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특별취재팀

전지원 기자 podragon@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책임집필 키즈 연구원▼

한국의 고령화 관련 보고서를 책임 집필한 마크 키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임연구원은 “나이 든 사람이 직장에 오래 머무는 것이 청년실업의 심화를 가져온다는 사회적 통념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OECD 국가의 통계를 보면 오히려 일하는 노인이 늘어날 때 청년실업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 유럽 국가들이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기퇴직’ 방식을 도입했다가 양쪽 모두의 취업률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게 그의 설명.

조기퇴직제가 사람들을 일찍 은퇴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술이나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이 이들을 대체할 수 없어 청년 고용이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키즈 연구원은 “한국보다 청년실업률이 훨씬 높은 프랑스도 최근 조기퇴직을 줄이고 고령자 취업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한국은 유럽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 고령층의 노동 참여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앞으로 농촌 노인의 비율이 줄어들고 연금제도가 성숙되면 참여율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며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 등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고령층이 근로 의욕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고령층의 근로 의욕이 전반적으로 높고, 조기퇴직을 부추기는 연금제도의 폐해를 겪기 전 한국 사회가 고령화의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선진국들은 이미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며 “한국 상황이 열악하긴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시작한다면 아주 늦은 것은 아니다”라고 희망적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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