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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4월 17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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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럴까. 기네스북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세계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은 무려 335년을 지속한 끝에 불과 20년 전인 1986년 4월 17일에야 끝났다. 그 희한한 사연을 알아보자.
1642년 영국 청교도혁명이 일어나자 왕당파는 의회파에 맹렬히 대항했지만 서서히 기세를 잃어갔다. 왕당파의 해군은 결국 잉글랜드 남서쪽에 떨어진 실리(Scilly) 군도에 들어가 결사항전을 준비했다. 1651년, 의회파를 지원했던 네덜란드 해군은 실리 군도의 왕당파를 소탕하기 위해 이곳으로 향했다.
마르턴 트롬프 제독은 전쟁을 선포했으나 그 대상은 영국이 될 수 없었다. 영국 정부가 있는 런던은 이미 네덜란드의 벗인 의회파가 장악했기 때문이다. 트롬프 제독은 ‘실리 군도’를 대상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전쟁은 네덜란드군이 총 한방 쏴보기도 전에 끝났다. 로버트 블레이크 제독이 이끄는 영국 의회파 군대가 먼저 출동해 남은 왕당파를 쓸어버렸던 것이다. 트롬프 제독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고국을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전쟁 종결을 문서로 정리할 필요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린 채.
1985년, 역사가이자 실리 군도 지방의회 의원인 로이 덩컨 씨는 마을 노인들로부터 “우리가 아직 네덜란드와 전쟁 중”이라는, 허무맹랑한 듯한 얘기를 들었다. 그는 런던의 네덜란드대사관에 이 ‘중대사안’을 문의했다. 얼마 뒤 돌아온 답은 “문서상으로 전쟁 상태가 맞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시칠리아 섬의 오기(誤記)가 아니냐’ 또는 ‘멍청한(Silly) 섬이냐’는 말이나 듣기 일쑤였던 실리 섬은 이렇게 해서 3세기 만에 다시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됐다. 실리 지방의회는 덩컨 의원의 발의로 런던 주재 네덜란드대사를 초청했다. 1986년 4월 17일 정오, 주민들의 갈채 속에 종전 협정이 조인됐다.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일화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역사는 결코 동화에 머무르지 않는다. 발발한 지 56년, 정지 상태에 들어간 지 53년을 바라보는 ‘우리의’ 전쟁은 언제쯤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에 묻힐 수 있을까.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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