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엄마 울지마, 내가 있잖아” 오늘도 웃는 ‘12살 애어른’

  • 입력 2008년 9월 12일 02시 57분


정신지체 형-동생 돌보는 소년

4식구 월 60만 원으로 생활

형 수발에도 싫은 내색 안해

“힘들어도 형이랑 동생이 있어 외롭지 않아요.”

울산 남구 달동에 살고 있는 이명제(가명·12) 군의 별명은 ‘애어른’. 작은 체구에 앳된 외모지만 또래보다 ‘어른스럽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정신지체 1급 판정을 받은 형 명수(가명·13) 군은 정신연령이 생후 6개월 수준이고, 동생 명훈(가명·6) 군까지 얼마 전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았다.

어머니 최모(39) 씨는 명제가 어릴 때 남편과 헤어져 혼자 삼형제를 돌보고 있다.

최 씨는 명수와 명훈을 하루 종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돌봐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명제 가족은 매월 60만 원이 조금 넘는 정부보조금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명제는 최 씨에게 하루하루 힘을 주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선한 눈매에 웃음이 많은 명제는 연예인을 좋아하고 장난을 좋아하는 아이지만 어머니가 없을 때는 형과 동생을 돌보는 ‘소년 가장’ 이다.

5년 전 막내 명훈이 갑자기 아파 최 씨가 아이를 업고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최 씨는 “당시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명수 걱정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부랴부랴 병원에서 돌아온 최 씨는 침대에 누워 있는 명수와 그 옆에 앉아 졸고 있는 명제를 발견했다. 형이 아프다고 하자 명제가 옆에서 돌봐주다 지쳐 둘 다 깜박 잠이 들었던 것. 명제는 화장실에서 명수 대변을 받아주고 목욕까지 시켜줬다고 한다.

최 씨는 “싫은 소리 한 번 안하며 형과 동생을 돌봐주고 양보하는 명제를 생각하면 늘 고맙고 미안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추석이 다가오지만 명제 가족에겐 특별한 계획이 없다. 몸이 불편한 두 아들을 데리고 어디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

최 씨는 “명제는 지금껏 뭔가를 사 달라거나 해 달라고 보챈 적이 없다”며 “이번 추석에는 명제만이라도 바람을 쐬게 해주고 싶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명제 가족을 돕고 있는 기아대책의 최민지 아동복지사업 팀장은 “먹을 것 하나도 서로 양보하는 가족애 넘치는 명제 가족이 더 풍성한 추석을 맞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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