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자연 인간]"갯벌-염습지 살리자" 영국 블랙워터강

  • 입력 2000년 10월 9일 19시 14분


영국 동남부 에섹스주를 굽이치며 흘러 북해로 연결되는 블랙워터강. 북해에 가까워지면서 마치 나팔처럼 넓어지는 블랙워터강 하구에 자리잡은 말든시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리는 모터보트를 쉽게 볼 수 있는 관광 휴양지이자 유럽에서도 이름난 철새 도래지이다.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레크리에이션 행위와 자연보호가 어떻게 한 장소에서 공존할 수 있을까.

오전 나절 보트를 타고 살펴본 블랙워터강 하구는 가도가도 끝없는 바닷물과 목초지가 대부분인 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시간 후 다시 찾은 블랙워터강 하구는 검푸른 바닷물은 간데없고 시야의 끝까지 검고 섬세한 진흙밭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갯벌에 고개를 처박고 먹이를 찾는 새떼들이 인상적이었다.

6시간마다 조수의 영향을 받아 전혀 다른 2개의 모습을 나태내는 블랙워터강 하구는 영국에서도 실험적인 갯벌보호정책인 이른바 ‘블랙워터 프로젝트’(www.suffolk.gov.uk/central.profile/costal.htlm)가 시행되는 곳이다. 총 64㎞의 블랙워터강중 바닷물의 영향을 받는 마지막 23㎞가 프로젝트의 대상.

블랙워터강은 갯벌과 염습지(鹽濕地)로 구성돼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새만금사업을 계기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갯벌은 해안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 1㎡의 갯벌에는 평균 1200마리의 갯지렁이와 1만5000여마리의 갯달팽이가 살고 있어 철새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식량 제공처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능은 거센 파도와 폭풍우를 막는 천연적인 해안 방어막이자 육지로부터 흘러나온 오염물질의 정화시설이라는 것.

갯벌과 육지 사이에 위치한 염습지는 짠물에 강한 퉁퉁마디 바다쇠비름 등 습지 식물이 살고 작은 도랑이 발달해 있는 늪지대로 해안 침식을 막고 유기물이 풍부해 생태계에 풍부한 자양분을 제공하는 곳이다.

블랙워터강 어귀의 염습지는 모두 684㏊(약 207만평) 규모. 해안 침식과 해수면 상승에 따라 1년에 2%씩 감소하고 있는데 1973년부터 1988년까지 벌써 20%가 손실됐다.

영국 정부 산하 자연보호기구의 잉글리시 내이쳐의 캐럴 레이드씨는 “블랙워터 프로젝트의 목적은 레크리에이션 관광 및 농어업 등으로 훼손되는 블랙워터강 하구에서 ‘인간과 자연의 균형’을 모색하자는 것이지만 핵심은 바로 이 갯벌과 염습지를 보호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랙워터강을 보호하는 정책은 기존의 발상을 뒤집는데서 출발했다. 대표적인 것이 제방 무너뜨리기.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바닷가를 따라 만들어놓은 콘크리트 제방을 무너뜨리고 대신 이곳을 염습지로 조성하는 것.

1995년 말든시는 사상 처음으로 강어귀 북쪽 톨리스버리 포구의 제방 60m를 터뜨렸다. 경작지 21㏊에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톨리스버리 외에 오플랜드 등 제방 트기는 지금까지 강어귀내 3곳에서 시행됐다. 염습지로 바뀐 이곳에는 현재 염습지에서 서식하는 식물과 바깥쪽 갯벌에서보다 더많은 갯달팽이 등 무척추동물의 보고로 변모했음이 밝혀졌다.

블랙워터강 주변의 ‘애보트 홀’ 농장이 제방 트기의 가장 좋은 예. 본래는 염습지였던 애보트 홀은 제방 안쪽에 흙을 메꿔 만든 목초지다. 말든시는 와일드라이프트러스트 환경청 및 잉글리시 내이쳐의 지원으로 700에이커의 땅을 사들여 제방을 무너뜨린뒤 염습지와 갈대밭을 조성하고 있다.

발상을 뒤집는 또 하나의 정책은 바닷물에 모래와 자갈을 분사하는 것이다. 환경청은 항로가 있는 인근 펠릭스토나 하위치항구에서 준설해온 모래를 해안 침식이 우려되는 블랙워터강 하구에 정기적으로 뿌려준다. 1995년이래 11만t의 모래가 이곳에 뿌려졌다.

기회만 있으면 바닷모래를 퍼내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정책이다. 반대로 배가 지나가는 지역에는 지속적인 준설이 행해진다. 준설은 생태계 어업 및 해안침식 방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강하구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규제도 뒤따랐다. 보트등록제와 속도제한 규정이 대표적이다. ‘미래 세대의 필요와 영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강하구의 잠재력을 유지시키면서도 현재 사람들에게 큰 이익을 줄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개발을 증진시킨다’는 리우환경회의의 정신에 충실한 블랙워터 프로젝트는 인간의 활동 자체를 근본적으로 막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에 관여했던 말든시청 앤드루 화이트씨의 설명이다.

화이트씨는 “보트 제트스키 등을 허용하되 등록제를 시행하고 해변에서 250m내에서는 시속 8노트를 넘지않도록 속도규정을 두었다”고 말했다. 요트의 속도제한은 가마우지 흑꼬리도요 흑기러기 재물새떼 등 국제적으로 중요한 철새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

이 지역 특산물인 청어를 보호하기 위해 유자망과 저인망 어업도 금지됐다. 염습지 고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청어는 강하구의 생태계와 철새들의 먹이로 중요하다는 이유.

영국도 처음부터 갯벌보호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1년에 5㎜씩 해수면이 상승하는데다 영국대륙 동남쪽이 가라앉으면서 해안의 콘크리트 제방이 깍여나갈 정도로 해안침식이 심해지자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기원전 4000년대의 신석기 시대 유적과 기원후 640년대의 어망 등 고고학적 유적에 대한 훼손 우려와 이 지역이 람사협약(습지보호협약)으로 보호되고 있는 철새 도래지라는 점도 중요했다. 블랙워터 프로젝트 담당관 니키 스퍼는 “밀물 때면 물에 잠기는 이들 유적지는 예전에 이 지역은 완전히 뭍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해수면 상승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심각하다고 전했다.

“갯벌을 메꿔 농지를 만들다니요?” 잉글리시 네이처의 레이드씨는 우리나라의 새만금사업을 설명해주자 “한국 정부도 갯벌의 무한한 잠재력에 주목할 것”을 당부했다.

<말든〓정성희기자>shchung@donga.com

▼유럽 최대 '새들의 낙원' 반스 엘름스 습지보전센터▼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으로 숨막히는 런던 중심부에서 불과 6㎞ 떨어진 곳에 새소리 물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새들의 낙원’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금년 5월 런던 서남부에서 문을 연 ‘반스 엘름스 야생조류 및 습지보전센터’(www.wetlandcenter.org.uk)가 바로 그런 곳으로 영국인의 독특한 자연관과 동물사랑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템스강 상류 10만여평에 자리잡은 이 습지보전센터는 습지(연못) 30곳 산책로 25개 교량27개로 구성돼 있으며 180종 이상의 야생조류를 비롯해 수많은 동식물이 서식하는 유럽 최대의 도심 인공습지다.

당초 이 습지센터는 빅토리아여왕 시대에 건설된 뒤 그동안 버려졌던 저수조 부지였다. 센터측은 지난 5년간 1500만파운드를 투입해 4개의 정방형 저수조 부지에 템스강 주변의 물을 끌어 모아 습지를 조성했다.

저수조 부지는 구불구불한 모양의 연못으로 복원됐고 연못에 서식하는 풍부한 먹이를 찾아 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군데 군데 만들어진 조류 전망대에 올라서면 희귀한 물총새를 비롯해 시베리아에서 아프리카까지 이동하는 많은 철새 무리를 만날 수 있다.

조류 전망대의 이름은 ‘새 공항(bird airport)’. 전망대안의 터치 스크린에 손을 대면 망원경 안에 잡히는 새의 여권(이름)과 출발지, 기착지, 항로가 상세히 드러난다. 또새 뿐만이 아니다. 습지와 습지를 잇는 산책로와 교량을 따라가다 보면 습지에 서식하는 독특한 식물군 뿐 아니라 수십종의 나비와 잠자리 개구리 달팽이 등도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이 자신이 관찰하는 동물이 무엇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곳곳에 설치된 컴퓨터가 자료를 제공한다.

습지센터 홍보담당 마틴 시니어씨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모든 것을 품어주는 습지 때문”이라며 습지는 생태계의 보고라고 강조했다.

<런던〓정성희기자>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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