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신문 기사교환]노지마記者의 '두얼굴의 해병대' 르포

  • 입력 2003년 4월 2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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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지 약 2주일. 전쟁이 장기전 양상을 띠면서 야전생활에 지친 병사들은 눈에 띄게 초조해하고 있다. 종군기자로 미군 제1해병대 제1연대와 동행하고 있는 일본 아사히신문의 노지마 쓰요시(野嶋剛·사진) 기자는 “병사들의 표정이나 행동은 전투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놀라울 정도로 차이가 났다”며 전선에서의 일상생활을 소개했다. 다음은 아사히신문 2일자에 게재된 르포.》

평소 병사들에게 인기 있는 화제는 단연 여자와 음식 얘기다.

최근 식량보급이 지연되면서 병사들은 ‘MRE’로 불리는 휴대용 야전식량을 하루 2개씩 배급받아 세끼로 나눠 먹는다. “배가 고프면 전투를 할 수 없다”는 불평이 잇따르자 지휘부는 식욕이 왕성한 젊은 군인들을 만족시킬 묘안을 짜내느라 고심하고 있다.

▼연재기사 목록▼

- 노지마記者의 '중립성 고민'
- 노지마記者 쿠탈하이 종군기
- 노지마記者 나시리야 종군기

MRE는 1번부터 25번까지 번호에 따라 들어 있는 음식물이 다르기 때문에 배급 직후 병사들의 관심은 누가 가장 맛있는 MRE를 받았는가에 집중된다.

하루종일 포르노 잡지를 뒤적이는 병사들도 적지 않다. 이동 중 이라크 군인의 시체나 불에 타는 건물을 보면 즐거워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이런 그들에게서 전쟁의 비장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전투가 임박하면 이들은 순식간에 표변한다. 먹이를 노리는 야수의 눈빛으로 변하고 잔뜩 흥분한 채 일사불란하게 총기를 점검한다.

“지금 전쟁터로 변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은 인류의 고대문명을 꽃피운 역사적인 장소”라고 몇몇 병사들에게 설명했지만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미군 병사들은 이국에서의 빡빡한 생활이나 적과의 대결을 내심 즐기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해병대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잠을 잘 구덩이를 파는 것. 자신의 몸을 뻗어 누울 수 있을 만큼 50㎝ 깊이로 판다. 구덩이는 지표면보다 따뜻해 잠자리로 적합할 뿐 아니라 적의 기습을 받을 때는 참호지로도 적격이다.

사막지대인 쿠웨이트와 이라크 남부에서는 땅을 파기 쉬웠지만 지금 주둔 중인 티그리스강 유역은 습지여서 점토질의 진흙을 파내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모래바람은 행군을 막는 최대의 장애물이다. 모래바람이 불면 시계(視界)는 50m에 불과하고 병사들은 천을 뒤집어쓴 채 트럭 뒤칸에 웅크리는 수밖에 없다. 눈이 아프고 콧물이 줄줄 나오며 무기를 작동시키지도 못한다.

이동식 화장실이 없는 탓에 용변은 야외에서 ‘적당히’ 해결한다. 아군 보초의 시야를 벗어나서는 안되므로 진지 한구석에서 용변을 본다. 처음엔 쑥스러워했지만 3일 정도 지나자 모두들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됐다.

미 해병대와 이라크 정규군의 전투가 일부 지역에서 재개됐다. 바그다드 공격의 거점이 될 쿠트를 빼앗으려는 미군과 이를 사수하려는 이라크군 사이에 본격적인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정리=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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