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선의 투자터치]개미들, 기관 저가매수 좇기보다 ‘뛰는 말’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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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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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격언- 밀짚모자는 겨울에 사라?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세계의 많은 사람이 즐겨 먹는 인스턴트 라면은 대만 출신 일본인으로 ‘세계 라면왕’이라고 불리는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 회장이 1958년에 개발했다. 인스턴트 라면은 조리의 편리성 덕택에 나오자마자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성공에 힘입어 안도 회장은 1971년 간편성을 한층 높인 컵라면을 개발했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컵라면이 성공하자 몇 년 뒤 그는 인스턴트 쌀밥인 컵라이스를 개발했다. 하지만 당시 ‘밥은 직접 지어 식탁에서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당했고 컵라이스는 투자비를 날린 채 결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최근 즉석쌀밥 시장이 크게 성장한 것을 보면 안도 회장이 미래 시장의 변화를 앞서 잘 읽어냈지만 컵라이스는 지나치게 앞서 가는 바람에 실패한 사례라고 하겠다.

주식 투자자들은 ‘밀짚모자는 겨울에 사라’ ‘털장갑은 여름에 사라’는 격언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어떤 주식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면 그 주식은 거래가 잘 안 되고 가격도 쌀 수밖에 없다. 이런 주식을 미리 싼값에 사두고 몇 달 또는 몇 년을 기다리면 언젠가 그 주식이 시장의 관심을 끌고 주가도 올라 이익을 보고 팔 수 있다는 얘기다.

밀짚모자를 겨울에 사는 투자 전략은 당연하고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이를 실천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처음에는 몇 년이고 기다리겠다는 각오로 남들이 쳐다보지 않는 주식을 사지만 자신이 산 주식은 꼼짝도 않는데 다른 주식들이 연일 기세등등하게 올라가면 이 상황을 참고 견딜 수 있는 투자자가 거의 없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속으로 몇 번 다짐하고 인내심을 발휘해 보지만 결국은 그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주식을 내다팔고 만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1992년 주식시장 개방을 앞두고 외국인투자가들이 선호할 주식을 찾아보았다. 외국인들은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은 주식을 좋아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고 종목을 찾았다. 당시 한국 증시의 평균 PER가 15 수준인데 농약주의 PER가 2∼5 수준으로 모든 업종 중에서 가장 저평가돼 있었다. 필자는 밀짚모자를 겨울에 산다는 심정으로 농약주를 사놓고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당시 우리 증시는 개방 이후 외국인투자 자금이 꾸준히 들어왔지만 경기 침체로 크게 오르지 못하다가 차츰 경기 회복세를 타고 주가도 바닥을 치고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농약주는 거의 오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한 반면에 다른 블루칩 주식들만 연일 상승세를 나타냈다. 몇 달을 더 기다리다가 종목 선택을 잘못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농약주를 팔아치우고 다른 주식으로 갈아탔다. 그러나 얼마 후 농약주는 크게 오르기 시작했고 필자는 좀 더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저평가된 주식을 미리 사두고 기다리는 것은 투자의 정석이지만 모든 투자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기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거대한 자금을 운용하면서 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기관투자가라면 포트폴리오 구성 차원에서 밀짚모자를 겨울에 산다는 생각으로 저평가된 주식을 분할 매수해두고 때가 오길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금이 적고 인내심도 부족한 일반 투자자에게는 그런 전략이 적합한 것 같지 않다. 겨울에 털모자를 사야 할 돈으로 밀짚모자를 미리 사뒀다가 괜히 추운 겨울에 고생만 잔뜩 하고 막상 여름이 왔을 때는 밀짚모자에 먼지만 쌓이고 유행에 뒤떨어진 모자를 쓰고 다닐 가능성도 있다.

일반 투자자에게는 오히려 ‘밀짚모자는 늦봄이나 초여름에 사라’고 권하고 싶다. 값은 조금 비싸더라도 당장 필요할 때 유행에 맞는 멋진 밀짚모자를 쓰고 해변을 활보하는 것이 좋다. 조금 싸게 산다고 먼지가 쌓이고 유행이 지난 밀짚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안도 회장의 컵라이스처럼 시장 흐름에 너무 앞서가면 큰 방향은 맞지만 실제 매매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 저평가돼 있는 주식을 사서 오랫동안 기다릴 자신이 없다면 시장 흐름에 맞게 ‘뛰는 말을 잡는 것’이 낫다.

SK증권 역삼역지점 영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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