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기업, 이것이 달랐다]신신제약

  • 입력 2009년 9월 12일 02시 55분


코멘트
신신제약 창업주 이영수 회장(왼쪽)이 회사의 기틀을 다졌다면 2003년 영입된 전문경영인 김한기 사장(오른쪽)은 ‘선택과 집중’으로 제2의 도약을 이뤘다. 사진 제공 신신제약
신신제약 창업주 이영수 회장(왼쪽)이 회사의 기틀을 다졌다면 2003년 영입된 전문경영인 김한기 사장(오른쪽)은 ‘선택과 집중’으로 제2의 도약을 이뤘다. 사진 제공 신신제약
신신제약 안성 중앙연구소 전경.
신신제약 안성 중앙연구소 전경.
고유명사 된 ‘신신파스’… 국민병 치료 자부심 경영 50년
‘붙이는 치료제’에 밀려 1990년대 위기
전문경영인 영입-기술개발로 정면돌파

하루에도 수십 개 신제품이 쏟아지는 제약시장에서 오랫동안 1등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제품 하나가 90% 이상의 점유율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불가능이 현실로 바뀐 시장이 있으니 바로 ‘파스’ 시장이다. 주인공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파스 명가(名家)’ 신신제약. 1959년 9월 ‘신신파스’ ‘신신반창고’ ‘신신티눈고’ 등 3개 제품으로 제약업에 뛰어든 이후 ‘관절염 치료제=파스’라는 등식을 만들어 낼 정도로 장수기업으로 우뚝 섰다.

○ ‘국민 병을 치료하자’

신신제약의 출발은 6·25전쟁이 나기 직전인 1950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학업체에 다니던 창업주 이영수 회장(82)이 지인 3명과 함께 회사를 창립한 것이다. 근육통 치료제인 파스를 주력 제품으로 선택한 것은 창업주인 이 회장의 의지 때문이었다.

당시 국민 대다수가 육체노동에 종사하던 터라 신경통, 어깨통, 관절염은 ‘국민 병’이나 다름없었다. 이 회장은 “배고픔 못지않게 국민을 괴롭혔던 근육통을 치료하는 것이 기업을 위하고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며 “당시만 해도 파스 시장은 고가의 일본 밀수 제품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국민이 질 좋고 값싼 국산 파스를 이용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으로 창업에 뛰어들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전쟁의 영향으로 회사는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쟁이 끝나도 주문이 들어오지 않아 공장 문을 닫는 날도 많았다. 이 회장은 과감한 투자를 선언하며 1959년 동업자들과의 지분을 청산하고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신신파스’와 함께 ‘신신반창고’ ‘신신티눈고’ 등 3개 품목을 한꺼번에 내놓고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시간이 갈수록 입소문이 번졌다. 일본 제품보다 질이 떨어진다는 반응은 사라지고 신신파스는 아파도 병원을 찾을 수 없는 서민들의 ‘약손’으로 자리 잡았다. 10년 만에 일본 최대 파스업체 니치반으로부터 파스 제작기술을 전수받은 것을 계기로 비약적인 성장도 이뤘다. 1971년엔 파스와 반창고를 이란에 처음으로 수출까지 하게 되었다.

당시 생산부장이던 장학순 고문은 “주문이 밀려 파스 부직포의 주 원료인 면사의 공급 부족 사태가 빚어질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덕분에 신신제약은 1983년 ‘1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제약사 가운데 완제의약품으로 100만 달러어치 수출을 달성한 것은 처음이었다.

혈관을 확장하는 ‘메틸살리신산’과 후끈한 느낌을 주는 ‘멘톨’ 등을 원료로 만드는 파스(Pas)는 연고를 의미하는 독일어 ‘파스타(Pasta)’에서 유래한 말. 1970년대부터 신신파스가 일본 제품을 제치고 국내 시장 1위로 등극하면서 우리나라에선 파스하면 신신파스가 상품 이름이 아니라 마치 고유명사처럼 굳어지게 됐다.

신신제약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뿌리는 형태의 ‘에어신신파스’(1967년), 피부에 직접 바르는 ‘신신물파스’(1971년), 성분을 보강하고 부직포를 강화한 ‘신신파스에어’(1989년) 등 다양한 형태의 파스 제품을 선보이며 ‘파스의 명가’로 자리매김했고 현재도 파스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 시련 딛고 제2의 도약 준비

물론 지난 50년간 내내 전성기는 아니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른 제약사들이 앞 다퉈 ‘붙이는 관절염 치료제’를 선보이면서 답보상태에 빠지게 된 것. 창사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신신제약이 택한 열쇠는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의 영입이었다.

2003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전문경영인 김한기 사장이 택한 전략은 ‘선택과 집중’. 김 사장은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자”며 그동안 생산해 오던 소화제 등 ‘먹는 약’ 생산라인을 과감히 없애고 파스에만 주력했다. 연구소도 설립하고 해외시장 개척에도 힘을 쏟았다. 질을 높이면서 수출길이 열리자 2000년 180억 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올해 500억 원을 예상할 정도로 늘었다.

김 사장은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가 선정한 ‘우수가업 승계 기업인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기술력이 뒷받침되자 다시 소비자들이 신신파스를 찾기 시작했다”며 “창립 50주년을 맞아 앞으로는 세계시장 개척을 강화해 2012년에는 1000억 원 매출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신제약 약사

―1959년: 이영수 회장 신신제약 창업

―1967년: 전일약품 인수합병

―1971년: 의약품 수출 개시

―1983년: 수출 100만 달러 달성

―1984년: 안산 공장 준공

―2003년: 전문경영인 김한기 사장 영입, 중앙연구소 설립

―2006년: 안산 제2공장 준공

―2008년: 500만 달러 수출탑 수상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