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정책 현주소]<5·끝>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하여

  • 입력 2004년 12월 16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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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가 분권화 작업을 통해 지향하는 최종 목표는 ‘진정한 지방자치의 실현’이다. 지방분권특별법 제3조도 ‘국정의 통일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지방의 창의성 및 다양성이 존중되는 내실 있는 지방자치가 바로 지방분권의 기본 이념’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47개 분권과제가 모두 실현된다 하더라도 정부가 제시한 미래상인 ‘지방 활력을 통한 분권형 선진국가’가 곧바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참여정부 분권화 작업의 문제점과 대안, 그리고 진정한 지방자치를 통해 분권형 선진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한지 전문가들의 제언을 들어본다.

▽47개 분권과제 통일성이 없다=권한 및 조직의 이양에는 반드시 인력과 예산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분권화 작업을 추진할 때는 특정 과제가 시행되었을 때를 가정한 인력·재원 조달 계획이 면밀하게 세워져 있어야 한다. 즉 연도별로 과제추진진도표를 작성하고 이에 따라 과제별로 추진 속도와 일정을 관리할 수 있어야 각 과제가 별 문제없이 시행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분권위의 과제들은 ‘각개약진’ 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확보를 위한 계획은 모두 2006년 이후로 잡혀 있다.

특정 과제가 법제화 단계를 거쳐 실시단계에 이르더라도 재원 마련이 안 돼 시행이 유보, 연기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분권화의 핵심 당사자가 지방자치단체와 중앙행정부처임에도 불구하고 과제 추진 주체가 중앙행정부처로만 돼 있는 점과 각종 과제의 입안·추진 과정에서 지방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각 과제의 구체안을 최종 심사하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 30명 가운데 지방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이 4명(지방 4대 협의체 대표)에 불과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600년 행정구역’ 바꿔야=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되면서도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행정구역과 주민생활권을 일치시키는 문제다.

주민들의 생활권역이 하나의 행정단위에 들어있는 게 가장 바람직한데 지금은 하나의 생활권역이 2, 3개 행정구역에 걸쳐 있거나 하나의 행정단위에 2, 3개의 생활권역이 존재하는 등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초와 광역으로 분할돼 있는 지방자치단체를 재조정해 하나로 통합하고 산하에 읍면동에 해당하는 일선 행정센터만을 두는 식으로 행정계층구조를 바꾸자는 의견도 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최막중(崔莫重) 교수는 “문명의 발달로 주민들의 생활권역이 크게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행정구역은 기본적으로 소 몰며 농사짓던 시대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며 “주민의 생활권과 실제 행정구역을 일치시키는 작업이 선행돼야 제대로 된 주민자치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지방의 수준을 높여야=전국 지자체장 250명에 대한 본보 설문조사에서 분권화 작업과 동시에 반드시 이뤄져야 할 3대 과제로 △공무원 자질 등 지방정부의 수준 제고 △지방의회의 역량 강화 △주민들의 참여 확대를 들었다. 지자체장들이 스스로 보기에도 여러 가지가 부족하다는 진단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참여정부의 ‘선 분권 후 보완’ 정책을 우려하는 학자들도 있다.

대구대 전영평(全永評·도시과학부) 교수는 “분권과 참여는 지방자치의 두 축”이라며 “분권과 함께 지방의 자치능력을 높이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돼야 분권화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의 중앙행정 참여가 가능해야=중앙행정부처의 상당수 정책은 지역의 운명을 좌우한다. 그러나 이런 정책의 입안이나 시행과정에서 지역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는 경우는 드물다. 중앙의 정치와 행정에 지방이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신라대 초의수(楚義秀·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방자치가 발달한 나라들의 경우 각 지방의 의견이 중앙정부에 전달돼 정책에 반영되도록 제도화돼 있다”며 “우리는 시도지사가 중앙정부에 의견을 밝히기 위해 데모를 해야 할 정도로 지방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지방자치가 활성화되면서 늘어날 지역간의 갈등을 조정,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의 분권화 과제 속엔 중앙-지방정부 또는 지방-지방정부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한 과제만 선정돼 있지 지역 주민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나 시스템 개발 등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또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분권화가 자칫 잘못하면 지역간 편차를 되레 심화시키거나 국가의 균형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편 경북대 김형기(金炯基·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분권화 작업은 지방자치 분야 가운데 행정자치에 치중되고 있다”며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각 지역이 독자적 경제권역을 형성해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산업자치로 승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중앙통제 대신할 주민 감시기능 필수”▼

“참여정부의 지방분권특별법은 분권을 위한 특별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굳이 성격을 규정하자면 지방분권촉진법 정도가 되겠죠.”

정세욱(鄭世煜·한국공공자치연구원장·사진) 명지대 명예교수는 15일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분권화 작업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정 교수는 “권한을 지방에 넘겨준다는 발상으로 분권을 추진하면 안 된다”며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되 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무를 스스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원칙이 먼저 세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서울대 법대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명지대 부총장,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한국지방자치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다음은 정 교수가 본보와 가진 인터뷰 요지.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지방분권특별법을 보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적인 방향만 제시했을 뿐 일반법에 우선하는 특별법으로서의 성격이 하나도 없었다.

특별법이란 일반법의 특정 조항 적용을 배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방분권특별법은 이런 것은 하나도 없고 ‘○○를 마련해야 한다’는 식의 선언적 내용만 들어있다.

또 주민에게 가장 가까운 자치단체가 모든 행정사무를 처리하는 게 원칙이다. 기초단체가 할 수 없는 것만 광역단체가 하고, 외교 국방 화폐발행 등 광역단체가 할 수 없는 것만 중앙정부가 해야 한다. 따라서 지방분권을 ‘중앙정부의 사무를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큰 오해다.

재정분권의 경우 대도시와 농촌지역의 재정력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섣불리 추진했다가는 지자체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대부분의 세원(稅源)이 서울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국세를 지방세로 전환하는 것보다는 지방교부세의 법정교부율을 25%까지 상향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병무업무, 보훈업무 등은 지자체에 과(課) 하나를 추가해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인데도 지방에 중앙부처의 하급기관을 마구잡이로 설치해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

이와 같은 특별지방행정기관을 정비하는 문제는 중앙행정부처의 반발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개별법을 하나하나 고쳐서는 처리하기 어렵다. 아예 특별지방행정기관 기능 조정에 대한 일괄이양법을 만들어 정리하는 게 나을 것이다.

지방분권의 밑바탕에는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킨다는 원칙이 깔려 있다. 중앙정부의 통제를 없애는 만큼 주민과 지방의회의 견제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도움말 주신 분(가나다 순)▼

김기수(金記洙) 행정자치부 지방분권지원단 총괄기획팀장

김진아(金珍我) 한국지방자치단체국제화재단 전문위원

김형기(金炯基) 지방분권국민운동 공동대표,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박재영(朴在泳)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지방분권팀장

박진영(朴眞永) 서울시 혁신분권담당관 분권이양팀장

송하진(宋河珍) 행정자치부 지방분권지원단장

윤성식(尹聖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

전영평(全永評) 대구경실련정책협의회 의장, 대구대 도시과학부 교수

정세욱(鄭世煜) 한국공공자치연구원장, 명지대 명예교수

주용학(朱龍學)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수석전문위원

초의수(楚義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막중(崔莫重)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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