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盧대통령과 거리두는 민주당

  • 입력 2003년 8월 6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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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여론조사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하는 등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아지며 민주당 내에서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당 중진들 사이에선 최근 노 대통령이 언론을 성토한 데서 보듯, ‘누가 뭐래도 내 갈 길을 간다’는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는 점을 들어 “더 이상 노 대통령에게 기댈 것이 없는 만큼 내년 총선에 대비해 당이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귀막은 盧▼

▽“대통령 비판하는 것도 지쳤다”=‘미스터 쓴소리’로 통하는 조순형(趙舜衡) 의원은 2일 노 대통령이 양길승(梁吉承)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의 사표수리 여부 등을 언급하며 언론을 격렬하게 비난한 이후 기자와 만나 “노 대통령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양길승 파문의 핵심은 그가 공무원 윤리강령을 어긴 데 있는 것이지, 이를 보도한 언론에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하지만 이런 말을 한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젠 비판하는 것도 지쳤다”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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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희(咸承熙) 의원은 “그동안 잘해보자는 뜻에서 비판도 하고 의견제시도 많이 했지만 반영된 것이 없다. 나도 이제 체념했다”고 말했다. 김경재(金景梓) 의원은 “당내에선 청와대를 두고 ‘우이독경(牛耳讀經·쇠 귀에 경읽기)’이란 얘기를 공공연히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선 때 노 대통령의 특보를 지낸 한 여권 인사는 “노 대통령이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는데 당에서 떠들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자조(自嘲)했다.

민주당 관계자들의 이런 반응 속에는 청와대가 민주당을 집권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다 여론 수렴 창구로서의 기능까지도 부정하고 있는 것 같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

한 관계자는 “명색이 여당이지만 정부와의 정책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며 “당정협조는 여론 반영의 통로이자 헌법이 규정한 정당정치의 기본인데 지금 청와대는 이런 기본을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등돌린 黨▼

▽“독자생존할 수밖에 없다”=김태랑(金太郞) 최고위원은 “역설적이지만 당과 청와대의 관계는 예전보다 부드러워졌다. 청와대에 대해 기대도 요구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며 “대통령은 대통령이고, 당은 당이니까 우리들끼리라도 추슬러 나가자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정대철(鄭大哲) 대표가 ‘당의 활성화를 통한 위상 확립’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 대표의 한 측근은 “노골적으로 말하면 ‘청와대가 망쳐놓은 국정을 당이라도 살려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류의 한 중진의원은 “주류 일각에선 지난해 ‘대통령 만들기’를 했지만 이제는 ‘대통령 관리하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며 “한두 명으로는 대통령의 고집을 당할 수 없는 만큼 당이 단합해 조직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논리의 배후에는 내년 총선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 한 관계자는 “현재의 여론 추세로 볼 때 내년 총선에서 노 대통령을 간판으로 내세우기가 힘든 상황이다. 당이라도 힘을 모으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순형 김근태(金槿泰) 김경재 의원 등 당내 중도파는 최근 주류와 비주류를 두루 접촉하며 “당이 체제를 정비해 내년 총선에 승리할 때까지만 서로 인내하자. 그 뒤 청와대에 대해 당당하게 요구할 것은 요구하자”고 설득해 상당한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는 전언이다.

▼“난 어떡해”▼

▽친노 신당파의 고민=당내에서 ‘탈(脫)노무현, 독자생존’을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한동안 ‘탈당 불사’까지 외치며 개혁신당 추진을 요구했던 친노 강경 신당파의 입장이 곤혹스러워졌다. 신당논의의 주도권을 상실한 것은 물론 자칫하면 탈당이냐, 민주당 잔류냐의 양자택일을 강요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측근 그룹도 당 안팎에서의 영향력 약화를 체감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한 386측근은 “집권 5개월여 만에 ‘노무현 측근’이란 정치적 프리미엄이 거의 사라져버렸다”며 “노 대통령의 고향인 부산 경남에서도 ‘노무현 측근’이란 점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친노 신당파 중 일부는 ‘민주당 해체 불가’를 공언하는 등 타협적 태도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류의 한 의원은 “신당파 내부에서도 신당 논의의 축이 ‘노 대통령의 뜻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하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로 옮겨가고 있는 양상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는 여전히 “지난해 대선 때 노 대통령은 지지율이 10%대로 하락했지만, 국민을 직접 상대하는 캠페인을 통해 재기(再起)했다”며 “노 대통령이 지지도 하락을 반전시킬 특단의 대책을 총선 전에 내놓을 것이다”며 ‘노무현 신당’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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