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불붙은 한나라 당권경쟁

  • 입력 2003년 4월 28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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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 재·보선 후 잠시 주춤했던 한나라당의 당권 레이스에 불이 붙었다. 전당대회 개최일이 6월 중순경으로 잠정 확정되면서 경선 일정이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당 대표 경선 주자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당 대표 경선의 최대 변수였던 서청원(徐淸源) 대표가 출마 결심을 굳히고 다음달 12일경 공식 출마 선언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분위기가 급격히 가열되고 있다. 김덕룡(金德龍) 의원은 28일 대규모 후원회 행사를 겸한 출정식을 가졌고, 최병렬(崔秉烈) 강재섭(姜在涉) 의원은 5월 중순 공식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후끈 달아오른 선거전의 혼탁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당 개혁의 목소리만 높았지 실제로는 줄 세우기와 돈 선거 등 구태의연한 선거 방식이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태정치’의 재연=이달 초 영남 출신 한 의원의 후원회엔 한 표가 아쉬운 당권 주자들이 총출동했으나 대부분은 ‘수모’를 당해야 했다. 이 지역 출신인 모 당권 주자가 후원회장에 늦게 도착한 데다가 후원회 축사도 이 주자만 독차지한 것이다.

행사 후 한 당권 주자는 “후원회장에서 이 지역의 한 중진은 노골적으로 ‘우리가 남이가’라며 지역주의를 부추겼다”며 “당내에서조차 소(小)지역의 벽을 뚫기가 힘들어 허탈했다”고 말했다.

‘돈 선거’의 징후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실제 모 후보가 호남지역을 방문, 해당 위원장들을 상대로 돈을 돌렸다는 내용의 ‘괴문서’가 지난달 국회 의원회관에 일제히 팩스로 날아든 적이 있었다. 또 최근 충청 지역까지 직접 내려가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한 후보에 대해서는 “벌써 전국을 한 바퀴 다 돌아다닌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모 주자 진영은 벌써 3단계로 전국 지구당 조직부장 선까지 ‘금일봉’을 내려 보냈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한 경선후보측은 “일부 주자가 벌써 수억원을 썼다는 얘기가 있다”며 “전당대회 일정이 늦춰지면서 ‘실탄’이 바닥났다고 하소연하는 소리까지 들린다”고 귀띔했다.

동시에 “A후보는 탈당할 사람” “B후보는 ‘공천 학살’을 할 사람”이라는 등 근거 없는 ‘흑색선전’이 난무하며 각 주자 진영간 물밑 비방전도 가열되고 있다.

▼차기 당직 거론하며 지지서명 받기도▼

▽줄 세우기 경쟁도 후끈=당규 정비를 맡은 이주영(李柱榮) 제1정조위원장은 “현역 의원들의 줄 세우기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의원들이 특정 주자 진영에서 선거운동을 못하도록 규정을 정비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부 주자 진영은 경선 캠프의 진용을 바꾸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하지만 각 주자 진영은 “우리를 미는 의원들이 이렇게 많다”는 식의 세(勢) 과시에 여념이 없다. 한때 모 후보 진영이 원내외 지구당위원장 130명의 지지 서명을 받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진위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줄 세우기 과정에서 차기 당직 인선까지 거론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의원은 “누구를 공개적으로 밀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고충을 토로했다. 영남권의 한 중진의원은 “공식 선거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지금 지지 입장을 밝히는 것은 의미 없다”라면서 “선거 중반 이후 대세가 확연해지면 급격한 ‘표쏠림’ 현상이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한편 당권 주자들의 잇단 ‘러브콜’의 표적이 돼온 강삼재(姜三載) 이부영(李富榮) 박근혜(朴槿惠) 의원 등의 향배도 관심거리다.

‘안기부 총선자금 유입사건’ 공판 때문에 침묵을 지켜온 강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의 의미가 큰 만큼 분명한 내 입장을 밝히거나 차선의 경우 특정 주자 지지 선언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부영 박근혜 의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엄정 중립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대의원 23만명 확보-투표율 대책 고심▼

▽경선 관리도 ‘산 넘어 산’=김수한(金守漢) 당 선관위원장은 “선거의 형식이나 절차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어내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대의원 수가 전국 유권자 수의 0.6%인 23만명이란 매머드급 규모여서 경선 관리에 성공할 경우 정당 선거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 선관위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당장 100만명의 당원 명부 중 ‘흠결 없는’ 23만명의 ‘진짜 당원’을 확정짓는 절차가 간단치 않다. 당 선관위는 2월부터 두 차례 확인 작업을 거쳐 다음달 말까지 대의원 명부를 확정지을 방침이지만 워낙 작업량이 방대해 시일이 촉박하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수도권에서 이미 확보된 당원 명부를 토대로 전화 확인을 해보니 ‘당 활동을 안 하겠다’는 사람이 60%나 됐다”며 “지구당별로 1000명 정도의 대의원을 확보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토로했다.

실제 투표율도 문제다. 투표율이 극히 낮을 경우 당 대표 선출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 선관위의 한 관계자도 “투표율을 올리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강구중이다”고 말했다.

후보들의 권역별 유세도 논란거리다. 당 선관위측은 후보들의 전국 투어가 “고비용의 주범”이라고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대다수 후보들은 “얼굴을 알릴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 중진 의원은 “당 지도부가 선거 관리에 실패할 경우 이번 전당대회가 새로운 출발이기보다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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