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법/전범재판소]'인류의 적' 응징, 국경-시효 없다

  • 입력 2001년 3월 19일 19시 00분


▼권오곤 재판관 임명으로 본 전범재판소▼

공포에 떠는 민간인들을 향한 무차별 사격, 유부녀와 여자 어린이를 가리지 않는 집단강간, 재산 약탈과 방화.

16일 구(舊)유고 국제전범재판소(ICTY) 재판관에 임명된 대구고법 권오곤(權五坤)부장판사(사진)가 앞으로 맡게 될 사건들은 발칸반도에서 저질러진 유고 내전의 전쟁범죄.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머나먼 타국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해 한국인이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인류공동의 적’을 처벌해야 한다는 인류의 숙원을 토대로 창설된 국제전범재판소가 있기에 가능하다.

전쟁터는 온갖 반인륜적인 범죄가 행해지는 인권유린의 무대다. 집단 살인범과 강간범, 절도범들이 판치는 ‘범죄현장’인 셈이다.

이런 범죄현장의 주역인 전범들은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처벌을 원하는 피해국가와 제3의 국가에서는 사법권이 자국 영토 또는 자국민에 대해서만 미친다는 속지(屬地)주의 또는 속인(屬人)주의에 따른 공간적 제약과 공소시효 등 시간적 제약으로 현실적으로 처벌이 어려웠다.

그러나 인류 공통의 적인 반인륜범죄는 전세계 인류 공동의 이름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전범에 대한 처벌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시도됐다. 그 첫 시도가 1945년 시작된 뉘른베르크 재판이다. 그후 전범 처벌에는 국경도 시효도 없다는 ‘보편적 관할’(Universal Jurisdiction)의 개념이 확립되면서 반인륜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처벌이 활발히 이뤄졌다.

보스니아 내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93년 설립된 유고국제형사재판소(ICTY)나 94년 세워진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의 활동이 대표적인 예다. ICTY는 97년 ‘인종청소부’로 불리던 세르비아계 전범 아르칸을 기소하기도 했으며 최근 이슬람계 주민들을 학살, 살인과 강간 등 모두 22건의 혐의로 기소된 전범들에 대해 징역 25년 등의 중형을 선고했다.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에 대한 형사처벌도 임박한 상태.

최근에는 전쟁범죄의 해석과 적용 범위도 확대되는 추세다. ICTY는 이달 초 중세와 고대의 건축물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던 도시 ‘두브로브니크’에 포격을 가한 세르비아 병사 등을 기소했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불릴 만큼 문화적 보호가치가 커 도시 전체가 유엔의 ‘세계문화재’로 지정돼 있던 지역을 파괴한 것은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논리다.

ICTY는 또 ‘강간 캠프’를 차리고 이슬람교 여성들을 성폭행한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 3명에 대해 지난달 최고 28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는 성을 노예화한 집단적 전시 성폭행을 반인류범죄로 규정해 처벌한 첫 사례다.

우리 법조계는 이같은 ‘인류 공동의 정의 구현’에 소극적이었다. 각종 국제사법기구에 수천명의 재판관과 재판연구관이 있지만 한국 출신은 국제해양법재판소의 박춘호 재판관과 권 부장판사 정도에 불과하다.

박찬운(朴燦運) 변호사는 “현 상황에서는 국제사법기구에 진출해 제 몫을 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국제기구에 당당히 진출할 수 있는 인적자원을 국가적 차원에서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즉결처분 대신 정의-원칙 고수…2차대전 전범처벌▼

3000여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2차 세계대전의 총성이 멎어갈 즈음 국제사회는 독일과 일본의 전범들이 당연히 즉결처분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에 이긴 연합국들은 검사에 의한 기소와 판사에 의한 재판이라는 복잡하고 지루한 사법절차를 거칠 것을 선택했다. 왜일까.

“전범들에 대한 신속하고 즉각적인 처리는 정의의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반면 재판에 의한 처리는 역사와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이를 통해 미래의 후손들은 나치의 잔혹성에 대한 진정한 기록을 물려받을 것이다.”

미국 관료들은 루즈벨트 당시 대통령에게 이같은 의견서를 전달했다. 그후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 소련 등 ‘빅4’ 연합국과 국제군사재판소(IMT)설립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유엔 최초의 국제군사재판은 45년 9월 독일의 뉘른베르크에서 시작됐다. 검사는 미국의 잭슨 연방대법관을 수석검찰관으로 해서 4개국 4명이 맡았고 재판부는 영국의 로렌스판사가 재판장이 돼 4개국 4명으로 구성됐다. 피고인은 괴링과 리벤스톱 등 히틀러의 잔당 24명.

이에 앞서 검사와 판사들은 국제군사재판의 대상을 명확히 했다. 침략전쟁의 준비와 실행 등 ‘평화에 대한 범죄’. 전쟁법과 관습을 위반한 ‘전쟁 범죄’. 전쟁 전후의 살인과 약탈, 정치적 인종적 박해 등 ‘인간성에 대한 범죄’ 등이 그것이다.

45년 10월 24명에 대한 기소장이 제출된 이래 11월 20일부터 46년 8월까지 심리가 진행됐으며 403회의 공판에 200여명이 증언대에 섰다. 46년 9월과 10월의 선고에서 재판도중 죽은 2명을 제외한 22명 가운데 12명이 교수형, 3명이 종신형, 4명이 유기형에 처해졌으며 3명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도쿄(東京) 전범재판’이라 불리는 ‘극동군사재판’도 같은 협약에 따라 46년 1월 시작됐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웹 재판장을 비롯한 10명의 재판관과 미국의 키난을 수석검찰관으로 한 30여명의 검찰관이 임명돼 일본 전범들을 재판했다.

46년 4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이하 28명의 피고인이 기소됐으며 48년 11월 사망자를 제외한 25명에 대해 모두 유죄가 인정돼 이중 7명이 교수형, 16명이 종신형에 처해졌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국제형사재판소란?▼

국경과 인종 시간을 초월한 인류의 ‘반인륜 범죄 근절’ 의지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관한 로마 규정’으로 현실화했다. 이 조약은 98년 7월17일 로마회의에서 유엔 다자간(多者間) 협약으로 통과됐는데 올해 1월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등 3개국이 서명함으로써 조약서명국이 139개국으로 늘어났다.

ICC 조약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조약서명국 중 60개국 이상이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데 현재 27개국만이 비준했다. 조약 발효에 필요한 나머지 33개국이 의회비준을 얻기 위해서는 2년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ICC 조약의 주요내용은 대량학살과 전쟁범죄 침략행위에 책임이 있는 개인을 기소하는 것으로 ICC는 관련 국가가 기소를 꺼리는 개인에 대해 체포영장과 소환장을 발부할 수 있다. ICC는 ‘상설기구’라는 점에서 ‘한시적 기구’인 구(舊)유고전범재판소(ICTY) 등 과거 전범재판소와 다르며 ‘개인의 범죄’를 다룬다는 점에서 ‘국가간 분쟁’을 다루는 국제사법재판소(ICJ)와 다르다.

ICC 창설의 가장 큰 걸림돌은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 미국은 세계분쟁지역에서 활동중인 미군 장병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기소될 위험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조약 비준에 소극적이다. 우리나라도 조약에만 서명한 상태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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