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사 기자의 따뜻한 약 이야기]“유전자 변이 같다면 암 종류 달라도 같은 약 처방”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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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사례 ‘NTRK 유전자 융합’
암종불문항암제 라로트렉티닙 효과

암은 흔히 ‘폐암 2기’, 유방암 4기’ 등 암 발생 부위와 전이 및 진행에 따라 이름을 짓는다. 암 치료법 역시 여기에 따라 평균적인 환자를 기준으로 표준화된 치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 보니 어떤 환자에게는 치료 효과가 매우 좋지만, 일부 환자들에게는 그렇지 못한 결과도 나온다. 특히 희귀 암처럼 원인이 잘 밝혀지지 않았거나 환자가 매우 소수인 경우 표준 치료법조차 해당되지 않는 암도 있다.

이런 암환자의 충족되지 않은 의학적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는 암 치료의 개념이 ‘개별 암’이 아닌 특정 유전자 변이를 ‘바이오마커’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가령 갑상샘(선)암이나 분비성침샘암 등 다른 부위에 생긴 다른 종류의 암이라도, 특정 유전자 변이가 같다면 종류에 상관없이 하나의 치료제로 치료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특정 유전자의 변이가 있다면 치료가 가능한 ‘암종류 불문 항암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기존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았던 환자들도 더 높은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해당되는 유전자 변이 중 대표적인 것이 ‘NTRK 유전자 융합’이다. NTRK는 수많은 인체 유전자의 한 종류로 주로 신경조직 등에 존재하는 특정 단백질을 형성하는데 관여한다. 만일 이 NTRK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와 융합하면 발암성 단백질을 생성해 암을 유발한다.

연령에 관계없이 이러한 NTRK 단백질이 존재하는 신체 부위라면 어디든 종양을 유발할 수 있다. NTRK 유전자 융합 양성 종양의 발생률은 매우 드문 편이지만 80개 이상의 유전자 융합이 폐암, 대장암, 췌장암, 갑상샘암, 분비성유방암, 영아섬유육종 등 다양한 암종 유형에서 발견되고 있다. 암 종류에 따라 발현 비율은 다르지만 일반적인 암에서는 1% 미만으로 추정되며 희귀암에선 높은 빈도를 보인다. 또 면역항암제로 알려진 키트루다 역시 ‘MSI-H/dMMR’ 라는 유전자가 있는 모든 7개 암종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MSI-H/dMMR는 주로 소화기암 쪽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 희귀암분과위원회 김호영 위원장(한림대성심병원 종양내과 교수)은 “특히 NTRK 유전자 융합이 있는 환자는 표준 치료에 반응이 낮아 치료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새로운 치료 옵션이 절실했던 상황”이라며 “NTRK는 국내에서 연간 약 50명 내외로 매우 희귀하지만 전 연령의 다양한 암에서 나타난다”고 말했다.

특정 바이오마커를 타깃으로 하는 만큼 치료 예후도 우수하다. NTRK 유전자 융합이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암종불문 항암제는 라로트렉티닙(상품명 바이엘의 비트락비)과 엔트릭티닙 (로슈 로즐리트렉)이 있다. 라로트렉티닙의 경우 임상연구에서 79%의 높은 치료 반응률, 63%의 부분 반응률, 16%의 완전 관해율을 달성했다. 또 생후 1개월부터 성인까지 전 연령에서 사용 가능하다. 키투루다의 경우 대장암 1차 치료에서 기존 치료(항암화학요법) 대비 3배 이상의 개선을 보였다.

김 교수는 “이제는 특정 부위별 암종 대신에 ‘NTRK 유전자 융합 양성 종양’처럼 유전자 변이를 기반으로 암의 정의와 항암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며 “기존 표준치료에 반응이 없어 치료 효과를 보지 못했던 환자들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 NTRK 유전자 융합이 발견된다면 치료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한 의학전문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헬스동아#건강#의학#유전자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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