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엡손은 프린터 기업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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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7월 20일 17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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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엡손 김대연 부장 인터뷰

486, 펜티엄 PC 시절부터 컴퓨터를 사용한 사람이라면 대개, '엡손(epson)'이라는 제조사와 브랜드를 한번쯤 들어 본 적 있겠다. 다만 거의 모든 이들이 '엡손은 프린터 기업'이라 알고 있을 것이고, 필자 역시 그렇다. 처음으로 486 PC와 함께 샀던 프린터가 '엡손'이었고, 이후로도 엡손 프린터/복합기는 다양한 환경과 공간에서 목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엡손의 김대연 부장(VP 비즈니스 팀)은, '엡손은 프린터 기업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프린터를 개발, 생산, 판매하는 세계 최대 제조사인 건 맞지만, 프린터가 엡손의 전부는 아니라 한다. 엡손의 슬로건이 'Exceed your Vision - 비전, 그 이상에 도전합니다'인 것만 봐도 프린터와 직결되지 않는 듯하다. 엡손이 프린터 기업이 아니면, 무슨, 뭐하는 기업이라는 건가?


한국엡손 김대연 부장

"올해가 한국엡손 창립 20주년이다. 스무살 생일을 맞아 'Exceed Your Vision'의 의미에서 더 나아가 사용자의 '비전'을 넘어서는 기술과 경험을 제공하려 한다. 여기에는 물론 프린터와 복합기 등이 포함되지만, 엡손은 궁극적으로 '비전'을 연구하는 기업이다. 참고로, 엡손 본사는 1942년에 창립됐다."

"한국엡손 홈페이지의 '제품' 메뉴에서 엡손 제품군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전세계 사용자에게 '프린터/복합기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만큼 프린터/복합기/스캐너 제품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프로젝터', '스마트글라스', '산업용로봇', 'POS기기', '골프스윙분석기' 등도 전세계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IT동아> '스마트글라스', '산업용로봇', 그리고 '골프스윙분석기' 등은 엡손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한 제품군이다. 엡손에서 스마트글라스, 로봇까지 만드나?

"프로젝터와 스마트글라스를 토대로 이른 바 '비주얼 비즈니스'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우선 스마트글라스는 '구글글라스' 등의 안경처럼 쓰는 영상 출력 기기로, 프로젝터와 같은 대형 화면을 눈 앞에 출력해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다른 웨어러블 글라스가 그러하듯,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기술을 통한 일상 편의기능도 제공한다.


엡손 스마트글라스 사용 사례

산업용로봇은 '프린터 만드는 엡손'과 전혀 연결되지 않지만, 공장용 생산로봇도 엡손이 직접 설계, 개발하고 있다. 엡손의 모든 제품은 엡손의 공장로봇이 생산한다. 사람의 팔 구조를 본떠 만든 엡손 스카라(SCARA)로봇은 전세계 스카라 로봇 시장 점유율 1위 제품이다. (스카라:SCARA, Selective Compliance Assembly Robot Arm)


엡손의 생산용 로봇

그리고 골프스윙분석기(M-트레이서)의 경우 이미 많은 프로나 골퍼들이 애용하고 있는 센서 기기인데, 엡손의 웨어러블 기기의 대표 제품이다. 골프채 그립 부분에 부착해 골퍼의 스윙 궤도나 속도, 클럽 패스, 임팩트, 로테이션 등을 측정해 스마트폰으로 전송한 후 이 데이터를 기록, 분석한다. 골프 레슨을 하는 프로나 레슨을 받는 아마추어 골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엡손 골프스윙분석기 'M-트레이서'

우리는 이렇게 프로젝터/스마트글라스 등의 <영상 사업 분야>, 프린터/복합기/스캐너 등의 <프린터 사업 분야>, 골프스윙분석기/웨어러블 밴드 등의 <웨어러블 사업 분야>, 산업용로봇/컨트롤러 등의 <로보틱스 사업 분야> 등 4개 사업 분야를 축으로 움직이고 있다. 프린터를 생산, 판매하고 있고, 전세계 사용자들에게 프린터 제조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프린터 전문 기업'은 아니라 말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 사업 분야에 프린터가 있고, 그 점유율이 전세계적으로 제법 클 뿐이다."

IT동아> 말한 대로 4개 사업 분야 중 프린터 분야가 매출 비중이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높을 듯하다. 그럼 엡손 내부에서는 어느 분야에 더욱 집중하려 하는가?

"아직까지는 프린터 관련 기술과 영향력, 노하우 등이 월등하기에 프린터 부분이 우선이고 매출 비중도 가장 크긴 하다. 프린터 다음으로 프로젝터 매출이 높다. 특히 엡손은 프로젝터를 토대로 한 영상 부분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프로젝터 핵심 부품을 비롯해 제품 전체를 자체 개발, 생산하는 곳은 전세계에 딱 두 군데인데, 그 하나가 바로 엡손이다.

이에 프로젝터 부분에 좀더 집중하고자 다양한 용도와 기능의 프로젝터를 선보이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출시된 엡손 프로젝터만 해도 그 종류와 모델이 매우 다양하다. 업무용도 외 개인용도, 가정용도로도 활용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넓혔다. 전국에 성행하고 있는 스크린골프연습장의 프로젝터 중에도 엡손 제품이 많다.


엡손의 가정용/홈시어터용 프로젝터

프린터 분야의 경우 그동안 엡손은 일반 사용자(가정용) 시장을 지향하며 성장했기에, 이제는 기업 시장(B2B)으로도 역량을 발휘할 계획이다. 이미 기업 시장은 몇몇 프린터 강자가 선점하고 있지만, 우리 만의 출력비/유지비 절감 강점으로 승부한다면 가능성은 크리라 기대하고 있다."

IT동아> 그럼 국내 프로젝터 시장에서 엡손의 위치는 어떠한가? 얼핏 따져도 10여 개 이상의 브랜드/제조사가 경쟁하고 있는 듯하다.

"국내 시장 점유율은 30% 정도로 1위다. 크든 작든 비싸든 싸든 '프로젝터' 기능을 제공하는 모든 제품군을 포함하는 프로젝터 전체 시장 기준이다. 2001년부터 15년 연속 시장 1위다(관련 기사 - http://it.donga.com/24696/). 다만 6,000 안시루멘(밝기 기준) 이상의 고광량 프로젝터 부분에서는 2위인데, 이전까지는 엡손이 고광량 프로젝터를 생산, 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고광량 프로젝터 모델을 출시하며 이 부분 석권에도 도전하고 있다. 어쨌든 이제는 시장 점유율 수치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보다는, 사용자들이 다양한 용도와 환경에서 프로젝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려 한다.

IT동아> 프로젝터 이야기를 좀더 해본다. 프로젝터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화질과 성능 등만 개선/발전했을 뿐 '혁신적' 제품은 등장한 적 없다. 프로젝터 시장 강자로서 엡손이 그리는 프로젝터 미래 트렌드는 무엇인가?

"프로젝터에 있어 해상도와 화질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이에 우리를 비롯한 여러 프로젝터 제조사는 TV와 동일한 풀HD, UHD, 4K 화질의 프로젝터를 속속 개발, 출시하고 있다. 프로젝터는 TV보다 화질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바꾸려는 목적이다. 여기에 우리는 사용자의 개입, 즉 인터랙션(Interaction)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를 테면, 100인치 이상 크기의 터치스크린인 것이다. 프로젝터로 출력한 영상 스크린 위에 사용자가 (마치 스마트폰 사용하듯) 손가락(혹은 스마트펜)으로 자유자재로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다. 이렇게 입력한 글자나 그림을 사용자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 등으로 바로 전송할 수도 있다. 일종의 전자칠판 같은 기능이다. 회의/미팅하며 기록한 내용을 그대로 사용자 기기로 전송하거나 프린터로 인쇄할 수 있다. 손가락이나 펜 이외에 사용자 몸짓, 제스쳐, 행동 등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프로젝터도 예상하고 있다.

그동안 '프로젝터(기기/제품)' 사업을 진행해 왔다면, 이제는 '프로젝션(영상/디스플레이)' 사업에 매진할 계획이다. 프로젝션 기술을 얹는 제품이 프로젝터일수도, 스마트글라스일수도, 혹은 또 다른 제품군일수도 있다."


엡손 전자칠판 프로젝터 'Epson 1430WI'

IT동아> 인터랙티브 프로젝터는 현재 국내에 얼마나 공급돼 있나?

"국내 기업 시장에는 이미 3~4년 전부터 공급, 배치되고 있다. 특히 교육기관 등의 수요가 많은데, 기존 프로젝션TV나 LCD TV 등과 비교하면, 우선 화면 크기에서 TV제품군은 프로젝터를 따라 올 수가 없다. 예를 들어, 150인치 TV와 프로젝터를 놓고 보면, 가격도 가격이지만 활용성, 관리성, 가독성, 빛 반사각(시야각), 눈 피로도 등에서 프로젝터가 훨씬 유리하다(물론 화질 자체는 TV가 더 우수하다). 더구나 30~40명의 학생이 모여 있는 교실이나 강의실 공간에서는 100인치 이상의 대화면이라야 맨 뒤 학생도 화면을 정확히 볼 수 있다.


엡손 인터랙션 프로젝터 사용 사례

IT동아> 최근 들어 초소형 프로젝터가 인기를 끌며 새 프로젝터 시장을 형성했다. 이곳저곳 가지고 다니며 프로젝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는데, 시장 1위의 프로젝터(프로젝션) 기업으로 이런 제품(통칭, 피코-pico 프로젝터)을 출시할 계획은 없나?

"이동성, 휴대성, 편의성이 높은 프로젝터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제품이지만, 프로젝터를 작게 만들다 보면 화질이나 해상도, 밝기, 성능 등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우리는 프로젝터의 근본에 따라 '명확하고 깨끗한 영상'을 출력해야 한다는 생각에 피코 프로젝터는 생산하지 않고 있다. 피코 프로젝터도 어쨌든 영상 기기인데, 이동성/휴대성을 강조하느라 화질/해상도를 낮추면, 결국 저화질/저해상도에 대한 반감이 제조사나 브랜드에 그대로 반영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엡손이 지향하는 '프로젝션 비즈니스'와는 거리가 멀다.

여담으로, 피코 프로젝터라는 제품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인기가 높다. 이들 제품은 가정 내 사용보다는 주로 외부/야외 사용을 목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다른 나라보다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도 피코 프로젝터가 인기를 얻게 된 원인으로 본다(스마트폰 화면 출력용)."

IT동아> 프로젝터 전문가로서, 사용자에게 제안하는 프로젝터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

"가정용 프로젝터라면 풀HD 화질 제품을 선택하길 권한다. 그리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과 무선으로 연결해 출력할 수 있는 연결성도 고려해야 겠다. 무조건 가격이 싼 제품만을 찾지 말고, 비슷한 사양과 가격이라면 제조사/브랜드도 따져 봄직하다. 누구나 프로젝터를 만들 수 있지만 이 분야에서 기술력과 생산력, 공신력을 가진 제조사/브랜드는 많지 않다. TV나 프로젝터와 같은 영상기기는 가격보다 제조사/브랜드를 꼼꼼히 따지길 제안한다.

학교, 학원 등 교육기관에서 사용한다면, 장시간 사용에 따른 교사의 눈부심 증상을 방지하기 위해 단초점 프로젝터(출력거리가 짧은 제품)가 유리하다. 아울러 효율적인 교육/강의를 위한 인터랙티브 프로젝터라면 더욱 좋다."


프로젝터의 다양한 활용 사례

IT동아> 5년 후 2021년의 엡손 프로젝터 모습은 어떠 하리라 예상하고 기대하는가?

"프로젝터 본연의 외형은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출력하는 방식이 지금보다 좀더 다양해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이를 테면, 마치 영화 '토탈 리콜(1990년)'의 한 장면처럼, 3D 홀로그램 영상을 출력해 실물처럼 보이도록 하는 프로젝터가 그렇다. 아울러 지금 엡손이 추진하는 사업 분야처럼, 사용자 몸에 좀더 가까워지는 '웨어러블 프로젝터(혹은 프로젝션)' 기술이 나타나리라 기대한다. 스마트글라스로 100인치 크기 이상의 화면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어쨌든 그동안 프로젝터라는 영상기기가 주로 업무용/기업용 제품으로 일부 활용됐다면, 5년 후에는 가정에서, 야외에서, 혹은 어디서든 일반 사용자가 일상 용도로 폭 넓게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동아닷컴 IT전문 이문규 기자 mun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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