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에 넣는 초음파 진단기로 환자를 검진하고 방사선과 로봇으로 암세포만 골라 없애는 의술은 몇 년 전까지 의료계의 꿈이자 숙원사업이었다. 그런데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 나노기술(NT)과 로봇기술(MT)이 급격히 발전하고 기술 융합에 속도가 붙는 요즘, 그 꿈이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다. 진단 장비만 해도 종전에는 덩치가 너무 커 움직이기도 힘들었으나 지금은 직접 끌고 다니는 컴퓨터단층촬영(CT) 기기가 해결사 역할을 한다. 3차원(3D) 영상을 자세히 볼 수 있는 640채널 CT 장비의 등장으로 2mm 종양까지 찾을 수 있다.
첨단 의료기의 상용화 주기가 짧아지면서 의료기 시장도 급변하고 있다. 최근 국내 의료기기 시장은 매년 9.6% 정도 성장하고 있다. 2009년 의료기기 시장은 3조644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1.3% 성장했다. 김성호 식품의약품안전청 의료기기정책과장은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CT, PET-MRI 등 융복합 기술 발달로 무한한 의료서비스가 탄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첨단을 달리는 암 치료 =뇌종양, 간암, 췌장암 등 인체 곳곳에 생기는 암 부위만 없애면서 정상세포는 손상을 주지 않는 기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기기인 노발리스는 종양 부위를 칼로 째지 않고 방사선을 쏘아 한 번에 종양을 태워 없앤다. 인천성모병원, 일산백병원, 분당차병원, 동아대병원, 천안 순천향대병원, 길병원 등에 이 기기가 들어왔다.
3D 입체영상과 높은 에너지를 내는 방사선으로 몸 안에 있는 암세포만을 추적해 제거하는 신형 암 치료 장비인 리니악도 첨단 기기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 이 장비는 고려대안산병원, 고려대구로병원, 경희의료원 등에 설치됐다.
실시간 관찰되는 CT 영상을 토대로 정밀한 방사선을 통해 암을 제거하는 토모세러피는 환자 맞춤형 첨단 의료장비로 통하고 있다. 간암과 췌장암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하이프나이프는 고강도의 초음파를 한 곳에 집중시켜 암세포를 박멸하는 장비로 마치 암을 칼로 도려낸 것 같은 효과를 낸다.
김철용 고려대 안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방사선 치료는 외과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수술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치료법”이라고 소개했다. 방사선 치료에서는 앞으로 암을 치료할 때 주변 조직을 전혀 침범하지 않고, 암 조직만을 파괴하는 기술이 더 개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립암센터가 도입한 양성자 치료기기는 방사선의 일종인 양성자를 제어하는 장비다. 이 장비를 사용하면 양성자가 환자의 몸 속을 통과하면서 암 부위 앞에 있는 정상 조직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암 부위에만 최고의 에너지를 쏘아 암세포를 없앤다.
이 같은 최신 방사선 치료에는 한 번에 1000만∼3000만 원의 비싼 진료비가 든다. 현재 보험이 적용되는 기기는 노발리스로 환자 본인 부담금은 50만 원 안팎이다. 4월부터는 18세 미만 소아암 환자에 한해서 양성자 치료기기에도 보험이 적용돼 환자 부담이 100만 원 정도로 줄어들 예정이다.
▽들고 다니는 의료기기=대개 CT 장비의 무게는 2, 3t. 하지만 최근에 바퀴가 달려 이동이 가능한 모바일 CT 장비(400kg)도 등장했다. 주로 신경외과,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등에서 성인의 머리, 목, 팔, 다리를 찍는 데 사용되며 소아는 전신 촬영이 가능하다.
모바일 CT 장비를 활용하면 수술 중에 병변의 위치나 잔여 종양 확인이 가능하다. 조만간에 성인의 전신을 찍을 수 있는 모바일 CT 장비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끌고다니는 CT 장비가 등장한 이유는 방사선 피폭량을 줄이는 기술이 발달되면서 수술장, 중환자실에서도 사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기기는 보라매병원과 분당차병원에서 볼 수 있다.
가운 속에 넣고 다니는 초음파 진단기(브이스캔)도 최근에 등장했다. 주로 응급실에서 응급 환자들을 대상으로 신속한 진단이 필요할 때 이용된다. 종전에는 초음파 검사를 받으려면 대기 환자들이 많고 정해진 장소에서 받아야 됐지만 브이스캔은 언제 어디서든 바로 검사 결과를 볼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환자의 임상정보를 바로 볼 수 있는 스마트폰 진료도 도입되고 있다. 한림대의료원의 경우 환자의 심전도뿐만 아니라 X선, CT 등의 영상검사 결과까지 조회가 가능하다.
▽나는 기술, 기는 제도=신재혁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척추센터 교수는 “최근 모바일 의료기기들의 등장으로 진단 속도가 더욱 빨라져 환자들이 대처할 수 있는 시간도 벌 수 있다”면서 “원격 및 화상진료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만 된다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실시간 진료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 의료기술이 도입되면 환자의 부담이 높아진다. 신의료 기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늦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신의료기술 가운데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양질의 신의료기술을 선별해 보험 적용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이 기관의 강지선 수가등재부 부장은 “신의료 기술이 종전 기술보다 효과가 좋고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을 겪는 경우 건강보험 재정이 허락하는 한 급여로 지원한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신의료 기술에 건강보험이 빨리 적용돼야 혜택을 보는 환자들이 늘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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