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가대교 ‘태풍맷집’ 6개월실험 거쳐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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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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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硏70분의1 모형제작, 해저터널주변에 파도실험

《“0.14m 파도 주세요.”‘끼이익’ 하는 소리가 나면서 잔잔했던 수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파도는 점점 커지며 거가대교를 막고 있는 방파제에 다가가 부딪혔다. 방파제를 보호하려고 설치한 삼각뿔 모양의 콘트리트 구조물인 ‘테트라포드’ 일부가 거센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굴러 떨어졌다. 부산 대죽도 부근에서는 큰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안쪽에 설치된 해저터널을 덮쳤다. 100년 만에 찾아온 ‘슈퍼 태풍’이 거제도 앞바다를 뒤흔들고 있었다.》
13일 최종 연결식을 마친 8.2km 길이의 거가대교는 가덕도와 대죽도 사이 3.7km가 해저터널로 이뤄졌다. 해저터널과 다리 연결부의 안전성은 거대 수조에서 모형실험을 통해 확보됐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 테니스장 4개 규모의 수조에 거제도 앞바다 모형 만들어 시험


진짜는 아니지만 태풍 현장을 방불케 하는 이곳은 경기도 안산 한국해양연구원 해양환경모의실험장이다. 13일 최종 연결식을 마친 ‘거가대교’는 바로 이곳에서 6개월에 걸친 엄격한 안전성 시험을 거쳐 탄생했다. 대우건설 측은 가로세로 길이가 각각 33m, 30m인, 테니스장 4배 규모의 대형 수조에 모의 거제도 앞바다를 만들고 각종 시험을 진행했다.

거가대교는 부산 가덕도에서 경남 거제도를 잇는 8.2km 길이의 다리다. 가덕도와 대죽도 사이 3.7km가 해저터널로 설계됐다. 이러한 형태의 구조물은 해저터널과 기존 교량을 연결하는 부분이 취약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했다. 보통 다른 나라의 해저터널은 내해나 만에 건설되는 데 비해 거가대교 해저터널은 파도와 바람이 심한 외해에 설계됐다. 연구진은 이 부분이 안전한지 유심히 점검했다.

한국해양연구원 연안개발에너지연구부는 수조에 교량과 해저터널을 연결하는 부분과 연결 부분을 보호하는 방파제를 70분의 1 크기로 제작했다. 대죽도나 중죽도 등 주변 지형을 비롯해 해저터널 위를 덮는 3∼4cm 크기의 테트라포드까지 섬세하게 구현했다. 이 같은 실험 수조를 만드는 데 2개월이나 걸렸다. 연구팀은 여기에 30만 L의 물을 채운 뒤 수조 한쪽 벽에 설치한 파도생성장치(조파장치)를 이용해 높이 14cm의 파도를 불규칙하게 발생시켰다. 이를 환산하면 파고가 10m 정도로 100년에 한 번 발생할 수 있는 파도다. 조파장치는 폭이 4.6m인 넓은 판 4개로 구성했고, 판으로 물을 밀어서 파도를 만든다. 한국해양연구원 오상호 선임연구원은 “조파장치는 파고 30cm까지 만들 수 있다”며 “주기가 일정한 파도 외에 불규칙한 파도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수조 속 파도 30분 맞자 파손…테트라포드 무게 72t으로 수정

파도가 친 지 30분이 지났다. 중죽도 부근에 쌓여 있던 방파제 테트라포드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3개가 파도에 쓸려나갔다. 몰려오는 파도를 잘게 부숴 힘을 약하게 만들어야 할 테트라포드가 실험실에서 30분밖에 견디지 못한 것이다. 실제라면 약 5시간 버티다가 결국 파도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라고 연구원 측은 설명했다. 오 선임연구원은 “중죽도 부근의 특수한 해저 지형 때문에 파도가 한곳에 집중되는 것 같다”며 “방파제를 구성하는 테트라포드 무게를 늘리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측은 대죽도 부근 방파제 테트라포드 무게를 50t에서 72t으로 설계 변경했다.

“10m파고 5시간만에 흔들”방파제 무게 늘려서 보완
해저 지형까지 정밀 재현, 파도방향-힘의 정도 측정 “구조물 안전 파악에 필수”

실험을 통해 죽도 부근에서는 파도가 방파제 안쪽으로 넘어오는 현상도 발견했다. 실제 바다에서는 방파제 1m당 20L 이상의 물이 넘어오면 방파제 안쪽에 매설된 해저터널에까지 충격이 전해진다. 해저터널을 감싸고 있는 피복재가 쓸려나가 해저터널 함체가 노출될 위험도 있다고 연구원 측은 전했다. 때로는 넘어온 물이 해저터널의 환기구에까지 튈 수 있다. 실험에서는 물방울이 몇 방울 튀는 것에 불과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환기구에 바닷물이 들어가 터널 내부 시설을 파괴할 수도 있다. 대우건설 GK(거제가덕)사업 관리팀 허진욱 과장은 “현재 거가대교는 방파제 안쪽에 둑이 하나 더 설치돼 있다”며 “방파제를 넘어 들어오는 물의 양을 측정해 둑의 높이를 결정하고 안전성과 내구성을 검증한 뒤 시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구조물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설계하는 방식은 3차원 공간이나 곡선을 설계할 때 한계가 있다”며 “실제상황과 가장 유사한 수조실험을 통해 구조물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일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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