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t's IT]한국에서 게임은 잠재적 범죄자?

동아일보 입력 2010-09-14 23:08수정 2010-09-15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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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제 약력에서 게임물 등급위원회 경력은 좀 빼주세요."

올해 초 한 교수와 대화하다 신문에 약력을 소개하려 했더니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게임물 등급위원회는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게임에 대해 등급을 분류하는 기관입니다. 등급 분류가 되지 않은 게임은 법률로 국내에서 유통시키지 못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런 권력을 가진 공공기관에서 활동한 경력을 빼달라니요? 이 교수님은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고 털어놓으시더군요.

"저도 범죄자가 된 셈이에요." 이 얘기는 최근 한 게임 개발자가 보내온 e메일에 적혀있던 내용입니다. 이 개발자는 누구나 쉽게 게임을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 개발도구를 만들었는데 게임물 등급위원회가 이렇게 만들어진 아마추어 게임들도 등급분류를 받으라는 공문을 보내왔다는 겁니다. 분류를 받지 않은 게임은 '불법'이라고 강조하면서요. 또 등급분류를 받으려면 최소 2만1000원 이상의 '심의수수료'를 내야 한다고 안내도 해줬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식당을 열고 장사를 하려면 식품위생법에 따른 의무를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집에서 만든 음식을 친구들과 나눠먹겠다는데 거기에 식품위생법을 적용하겠다고 정부기관이 공문을 보내온다면, 그리고 식품위생법을 위반하지 않으려면 음식을 만들 때마다 세금을 내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지금 딱 그런 일이 벌어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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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물 등급위원회에 어찌된 영문인지 물어봤습니다. 모든 게임은 등급 분류를 받아야 하는데 이런 게임도 등급 분류 대상이라는 신고를 받아 무시할 수 없었다는 해명을 들었습니다. '모든 게임'을 등급분류 대상으로 삼는 건 문제도 있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자신들도 문제점을 일부 인정하지만 위원회는 입법 기관이 아니라 법률 집행기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하더군요.

이는 게임이 공공에 배포되기 전에 사전 검열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비롯됩니다. 물론 정부는 '검열'이라는 표현 대신 '등급 분류'라고 표현하지만 분류를 받지 못하면 유통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의 검열과 다를 바 없습니다. 현재 이런 검열 방식을 택하는 산업은 거의 없습니다. 일정 기준만 법률이 정하고 해당 기준을 지키지 못한 생산물은 나중에 '사후 규제'를 통해 유통을 막는 게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페니아케이드게임쇼(PAX)라는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이 행사는 말 그대로 '게이머들의 축제'였습니다. 게임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2박3일 동안 수없이 많은 연구모임을 통해 게임 시나리오 작성법, 최신 오디오 기술로 현실감을 높이는 법 등을 토론했습니다. 그 시간에 한국에서는 게이머들이 게임을 만들어 보려다 정부로부터 '범죄자'로 지목되고 있었습니다. 정부가 게임이 한국 문화콘텐츠 상품 수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며 '효자 상품'이라고 치켜세운 게 엊그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칭찬보다는 발목이나 잡지 않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요?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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