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5일 오전 대전 유성구 KAIST 기계공작실에서 열린 모바일하버 공개시연회. 흔들리는 파도에서 안정을 유지하는 스프레더로 컨테이너를 옮기는 작업이 이뤄졌다. 사진 제공 KAIST
전략적 장기 연구개발 안돼 미래 성장동력 점차 사라져
국과위 상설화-전담부처 등 기획-분석-관리 조직 있어야
지난해 10월 초 국회에서는 과학기술 국정감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KAIST의 ‘움직이는 항구(모바일 하버)’ 사업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한 해에 250억 원이 들어가는 이 사업의 타당성을 놓고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특히 이 사업은 타당성 여부를 떠나 주관 부처가 바뀌면서 혼란이 더 커졌다. 지난해 3월 17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가 열리기 전까지 이 사업의 주관 부처는 지식경제부였다. 그러나 국과위에서 500억 원의 예산을 배정받으며 교육과학기술부 사업으로 분류됐다. 이 사업은 올해 초 다시 지경부 사업으로 바뀌었다. KAIST 모바일하버사업단장 곽병만 교수는 “예산 삭감과 함께 매년 연구비를 새로 받아야 하는 단기공모과제로 변경됐다”며 “이에 따라 연구개발 목표도 축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만일 과학기술 컨트롤타워가 존재하고 이를 통해 기획 조정 기능이 발동됐다면 1년마다 사업의 주관 부처가 바뀌는 혼선은 없었을 것이다.
○ 주관 부처 바뀌며 연구 중단 위기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한국화학연구원은 이번 정부 들어 소속 부처를 과거 과학기술부에서 지경부로 옮겼다. 이 연구원의 신물질연구단은 신약을 개발할 때 필요한 기초연구를 한다. 연구단은 과학기술부에서 모두 9년을 목표로 6년 동안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지경부로 소속을 옮기면서 연구가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올해까지는 마지막 6년째 연구비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지만 내년부터는 연구비가 끊겨 연구 성과도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부랴부랴 연구 당사자들이 나섰고 이들은 ‘신약 개발을 위한 범부처적 협의체’를 만들어 연구단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화학연의 한 관계자는 “국과위 사회기반기술전문위원회 위원장인 김대경 중앙대 약대 교수가 주축이 돼 연구단을 지원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처음부터 과학기술 조정 기능이 발동했다면 이런 위기도 없었고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들의 모임인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안종석 회장은 “새 정부 들어 기초연구비가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에 정교한 전략 없이 연구개발이 추진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과기부가 사라지면서 10년 이상 장기적인 안목에서 육성해야 할 성장동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과학자들은 “이런 문제들이 결국 ‘과기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시민단체인 바른 과학기술 사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련)은 지난달 말 과학기술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며 가장 잘못한 정책으로 ‘과기부와 정보통신부를 폐지하고 교과부와 지경부로 개편’한 것을 꼽았다. 전체 응답자의 74%가 부정적으로 답변했다.
○ “과기 컨트롤타워 빨리 복원해야”
현 정부는 참여정부 시절에 과기부의 조정을 받던 출연연구소들을 교과부, 지경부 2개 부처가 나눠 관리하도록 했다. ‘교과부-기초기술연구회-13개 출연연’과 ‘지경부-산업기술연구회-14개 출연연’으로 양분됐다. 과기부 시절에는 3개 연구회(기초·공공·산업) 이사장이 매주 모여 업무를 조정하는 회의를 진행했지만 현재는 공식적인 회의가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출연연에 주는 연구비의 성격도 변했다. 본보의 분석 결과 현 정부 출범 이후 출연연이 소속 부처 이외의 정부기관에서 받은 연구비 비율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출연연은 2007년엔 국가연구비의 27%인 2500억 원을 과기부 외의 정부 부처에서 받았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에는 36%, 2009년에는 41%로 늘어났다. 산업기술연구회 역시 마찬가지다. 2007년엔 24%였지만 2008년 26%, 2009년엔 33%로 크게 늘어났다. 배종태 KAIST 교수는 “타 부처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문제가 되진 않지만 지배구조 문제에선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과기 컨트롤타워를 복원하는 방법으로 △과학기술 전담 부처 신설 △국과위 상설화 △청와대에 과기수석 신설 또는 과기보좌관 상설화 등을 꼽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지난달 21일 대덕연구단지를 방문해 언급한 과기보좌관 상설화는 기존 틀을 보완하는 성격이 짙다. 송위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팀장은 “과기 컨트롤타워에는 과학기술 혁신 전략을 기획, 분석, 관리할 실질적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을 의장으로 한 국과위를 상설화하는 방안과 과학기술 전담 부처를 신설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꼽힌다. 국과위가 비상근 조직이어서 과학기술 정책이 발 빠르게 반영되기 힘든 구조라고 지적한다. 방송통신위원회처럼 상설화해 힘을 실어주고 기획 조정 기능도 살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교과부 등 기존 정부 부처와 새로운 갈등도 우려되고 ‘머리’는 있지만 ‘손발’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이상민 의원(자유선진당)은 “과학기술 전담 부처가 시급하며 단순하게 1개 부처의 부활이 아니라 연구개발을 총지휘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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