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여성은 남성보다 수학을 못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2일 14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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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과학과 수학에서, 여성은 언어에서 더 뛰어나다는 게 상식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맞다고 하는 전문가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고정관념이 잘못된 성적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2008학년도 수능을 제외한 2005~2009학년도 연도별 수능 점수를 분석한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여학생이 수학을 못한다는 속설이 틀리지 않았다는 보도가 종종 나왔다. 최근 5년간 수리영역 평균점수는 남학생이 94.64점을 받아 여학생(86.56점)보다 7점 정도 높았다.

2006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도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은 남학생과 489점으로 여학생보다 12점 높았다. 수학 점수 격차가 가장 큰 국가는 칠레로,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무려 28점이나 높았다. 23점 차이가 나는 오스트리아, 20점 차이가 나는 독일과 일본이 그 뒤를 이었다. PISA에 참여한 56개국 가운데 여학생의 수학점수가 높은 국가는 아이슬란드, 태국 등 5개 국가에 그쳤다. 일부에서는 남성이 선천적으로 여성보다 수학을 잘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학 점수 차이가 유전적 요인이기 보다는 성적 고정관념 때문이란 지적도 많다.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팀은 6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대부분 나라에서 수학 성적이 좋은 여성이 적은 이유는 성적불평등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최근 수학과 과학을 다루는 여성 인력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을 일례로 들었다. 실제 1970년 영국에서 여성 물리학 박사의 비율은 5.5%에 그쳤지만 지금은 30%에 이른다는 것. 같은 기간 미국에서 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의 비율은 8%에서 32%로 크게 늘었다. '과학과 수학은 남성 학문'이란 고정관념이 점차 깨지면서 여성의 유입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사이언스'에도 비슷한 연구결과가 소개됐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파올라 사피엔자 교수진은 2003년 PISA를 분석해 수학에서 남학생이 여학생을 평균 10점 정도 앞질렀지만 "이런 결과는 남녀 차이보단 문화에 따른 영향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는 국가 간 남녀평등정도에 따라 수학 점수 격차가 크게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남녀평등지수가 높은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에선 여학생의 수학 성적이 남학생과 비슷했다. 반면 남녀평등지수가 낮은 터키 등은 격차가 23점이나 났다.

'남녀의 수학격차는 생물학적 특성'이란 생각은 한국에서도 여전하다. 이는 자칫 편견으로 이어지기 쉽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04년 중·고교 수학교사 403명(남자 202명, 여자 2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중등학생의 수학에서의 성별 격차 및 해소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10명 가운데 4명은 '수학에 뛰어난 학생 중 남학생이 많은 것은 선천적'이라고 답했다.

남학생이 우수하다고 답한 교사들 가운데 50%는 '창의성과 문제해결력'을 그 이유로 꼽았다. '수학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42.9%)'이 뒤를 이었다. 반면, 여학생이 우수하다고 답한 교사들 중 47.6%는 수업태도가 좋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남학생은 선천적 능력이, 여학생은 후천적 태도가 수학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정해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어려서부터 여아에게는 소꿉놀이 장난감을 주고 남아에게는 블록이나 로봇을 준다"며 "이런 교육적 자극의 차이가 사회문화적으로 수학, 과학은 남성의 영역으로 받아들이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원은 "수학은 남학생에게 어울리는 과목이란 교사들의 성 고정관념이 학습과정을 통해 다시 학생들에게 주입돼 학생들의 성 고정관념도 강화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며 "양성 평등적인 교육 기반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기자 xrock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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