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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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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은 그 대상자마저도 일단 수긍하게 되는 근거 있는 비판과는 구분된다. 악플은 그 대상자의 입장이나 조건 혹은 어떤 행위의 전말이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거의 즉발적으로 내뱉는 욕설이거나 인신 비방인 경우가 많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 나아가 인터넷 문화 전체까지 위협할 수 있는 행위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조금이나마 개선해 보고자 하는 운동이 있다면 그 의의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악플을 배제하고 선플을 권장하려는 새로운 흐름에 있어서도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악플을 줄여 나가는 방법에 있어서 어떤 인위적인 조치와 도덕률의 강제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악플을 배제하자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높이자는 호소이다.
그런데 역사의 여러 과정에서 확인되었듯이 ‘도덕 운동’은 최소한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자칫 위압적인 계몽 운동으로 번져 가는 수가 있다. 원래 취지와는 어긋나게 일종의 ‘악플 몰아내기’ 방식이 되어서는 곤란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만약 그 사회의 도덕이나 집합적 심성의 섬세한 성찰에 의한 개선이 아니라 이 운동이 법령 정비, 기관 설치, 수직 계열화된 기구 창설로 이어진다면 본의 아니게 정치적인 오해를 낳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요란한 캠페인 구호만 자극하다가 그칠 우려마저 있다.
다음으로 악플은 줄여 나가야 할 것인데 그러자면 어떻게 줄여 나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두루 모아야 한다. 악플 배제와 선플 확산은 결코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가 아니다. 악플과 선플은 서로 맞붙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사회의 도덕과 소통과 관계의 성숙에 따라 생성되는 두 가지 다른 양상이다. 이것을 줄이면 저것이 늘 것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최근 국정감사장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사진기자에게 거친 말을 해서 비난을 받았다. 악플은 이런 사회 현상에 의하여 촉발된다. 고운 말 예쁜 말을 쓸 줄 모르고, 그래서 선플 다는 마음까지 다 상실해서 악플이 대세인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악플을 줄이고 선플을 확산하자는 최근의 흐름은 기본적으로 이 사회의 인간적 조건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바탕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왜 이 사회가 상대방을 헐뜯고 작은 사실을 악의적으로 부풀리게 되었는가, 왜 이 사회가 한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을 확산하는 데 이처럼 집요하게 몰두하게 되었는가를 우선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에서는 그저 말장난이라고 보아 넘길 수 없는 악의적인 비난이 횡행하고 있어서 근원적인 성찰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현실적으로는 무기력하게 들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살벌한 무한 경쟁 드라이브에 인간적인 제동을 걸기 어렵고 경제 사정의 악화로 만성적인 취업난에 생존의 불안까지 엄습해 오는 상황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선플 확산 운동이 지닌 의미를 밝혀 주는 한편으로 그것이 또한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를 말해 준다. 악플 배제와 선플 확산 운동은 우리 사회의 사회문화적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 전제가 될 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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