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의 입자’ 있을까? 한국인이 찾을까?

  • 입력 2008년 6월 20일 03시 03분


둘레만 27km에 달하는 거대강입자가속기의 내부. 양성자가 이동하는 터널 내부 모습(왼쪽)과 양성자 충돌 후 나올 신의 입자를 찾아내는 검출기. 사진 제공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둘레만 27km에 달하는 거대강입자가속기의 내부. 양성자가 이동하는 터널 내부 모습(왼쪽)과 양성자 충돌 후 나올 신의 입자를 찾아내는 검출기. 사진 제공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힉스가 반응을 일으키는 모습의 상상도. 사진 제공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힉스가 반응을 일으키는 모습의 상상도. 사진 제공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빅뱅 순간 재현할 사상최대 실험장치 ‘거대강입자가속기(LHC)’ 가동 눈앞에

신이 숨겨 놓은 마지막 입자를 찾기 위한 금세기 최대의 물리 쇼가 스위스 제네바 근교에서 곧 시작된다. 한국인 과학자들도 세계의 천재들과 머리를 맞대고 신의 입자 찾기에 나선다. 과연 신의 입자를 찾는 그날, 그곳에서 “심봤다”는 환호성이 터져 나올까.

○우주에서 가장 추운 곳

제네바 근교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지대 땅속 100m 지하에는 지름 8km, 둘레 27km가 넘는 원형 터널이 설치돼 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14년 만에 완공을 눈앞에 둔 거대강입자가속기(LHC)다. 가속기를 짓는 데 쓴 돈만 수조 원, 상주하는 과학자만 2500명에 이른다. 가속기는 이르면 7월 초에 가동될 예정이지만 다소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LHC가 가동되면 거대한 터널 안에서 화려한 입자 쇼가 펼쳐진다. 원자핵을 만드는 입자인 양성자의 충돌 실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양성자는 빛의 99.99%의 속도로 터널을 1만 바퀴 이상 돌다가 반대 방향으로 달리던 양성자와 충돌한다. 14조 전자볼트의 거대한 에너지가 발생하며 우주의 빅뱅 순간을 재현한다. 이때 신의 입자가 탄생한다.

양성자의 궤도를 유도하는 초전도 자석은 영하 271.1도로 유지된다. 우주 공간(영하 271도)보다 온도가 낮아 자석들이 있는 곳은 우주에서 가장 추운 셈이다.



○“힉스 입자를 찾아라”

CERN의 40동 연구동의 RH32호 연구실에는 태극무늬 부채가 걸려 있다. 한국인의 연구실인 이곳의 터줏대감이 7년째 CERN에서 상주하고 있는 노상률 박사다.

그는 물질에 질량을 생기게 하는 힉스 입자를 찾고 있다. 가속기 터널 안에서 양성자 2개가 충돌할 때 1초에 약 1억 개의 입자가 생긴다. 여기서 힉스를 찾아내려면 나머지 입자를 없애야 한다. 노 박사는 “나머지 입자를 30개까지 줄였다”며 “마지막 하나까지 없애 오차를 줄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노 박사 외에도 성균관대 물리학과의 최영일(한국CMS그룹 단장) 교수와 최수용 교수 등이 이곳을 자주 방문해 힉스 입자 찾기에 나설 예정이다.

양성자는 1초에 6억 번이나 충돌하지만 힉스 입자는 하루에 하나 나올까 말까다. 신의 입자를 보려면 좋은 눈, 입자 검출기가 필요하다. 현재 40여 개국에서 입자 검출기를 제작했다. 박성근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도 ‘뮤온입자 검출기’를 직접 만들어 가속기에 설치했다. 과연 한국인이 만든 검출기에서 힉스 입자가 먼저 발견될지 주목된다.

두 개의 양성자가 충돌할 때 아주 작은 미니 블랙홀이 만들어질 수 있다. 박성찬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박사는 “미니 블랙홀은 3차원을 넘어 6개 또는 7개의 다른 차원을 보여 줄 수 있다”며 “양성자가 충돌할 때 내놓는 입자들의 모습을 통해 미니 블랙홀과 여분의 차원을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귀년 경북대 물리학과 교수도 새로운 차원에서 중력을 일으키는 입자인 ‘그래비톤’ 등을 찾아 나선다.

가속기에서 초대칭 입자를 탐색할 계획인 김동희 경북대 물리학과 교수는 “국내 입자물리학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LHC의 한국 과학자들이 수는 적지만 주제를 잘 잡고 팀워크를 발휘하면 다른 나라보다 앞선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LHC를 넘어서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힉스 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100달러 내기를 해 힉스 입자의 존재를 처음 예언한 영국 에든버러대 피터 힉스 교수와 설전을 벌였다. 만일 힉스 입자가 LHC에서 발견되지 않으면 더 큰 가속기를 짓거나 새로운 물리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

LHC보다 더 큰 가속기를 만들 수 있을까. 최수용 교수는 “둘레가 200km를 넘는 슈퍼가속기를 구상한 과학자도 있지만 아이디어 수준”이라며 “지구 전체만 한 터널을 파서 가속기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야말로 공상과학의 단계”라고 밝혔다. KAIST 최기운 교수와 ‘신기루 초대칭 깨어짐’ 현상을 LHC에서 연구하고 있는 한스 닐레스 독일 본대 교수는 “LHC는 우리 세대가 볼 수 있는 최대한의 크기”라면서도 “우주 데이터나 양성자 붕괴 실험 등 다른 연구로 가속기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 우주물리와수학연구소 무라야마 히토시 소장은 “미국에선 작은 건물만 한 가속기로 LHC 정도의 성능을 내려는 연구도 하고 있다”며 “20, 30년 뒤에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제네바=목정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loveeach@donga.com

■ LHC가 풀어야 할 우주의 비밀은

모든 질량의 근원인 ‘힉스’ 검출

초대칭 입자 발견 ‘끈이론’ 입증

과학자들은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우주와 자연의 근원을 한 꺼풀 벗겨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먼저 모든 질량의 근원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입자물리학에서는 양성자, 중성자 등 모든 소립자에 질량을 갖게 하는 ‘힉스’라는 입자의 존재를 가정해 왔다. 힉스가 없다면 우주의 질량은 제로다.

실제로 우주의 진화와 물질의 근원을 설명하는 데 상용되는 표준모형에 따르면 물질은 쿼크 6개와 렙톤 6개, 그리고 이들을 묶는 힘(보존) 4개와 힉스로 구성된다. 1964년 주창자인 영국 에든버러대 힉스 교수의 이름을 딴 이 입자는 다른 입자들과 달리 아직까지 검출되지 않았다.

힉스는 양성자가 충돌할 때 아주 짧은 순간(10의 25제곱분의 1초) 존재했다가 붕괴된다. 이를 검출하려면 양성자를 전자기장 안에서 빛 속도의 99.97% 이상의 속도로 날려 서로 부딪치게 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하면 양성자 질량의 100∼200배 정도로 추정되는 힉스를 검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만일 힉스가 발견되지 않을 경우 표준모형은 근본적 수정이 불가피하다.

LHC에서는 표준모형의 완성과 함께 새로운 물리 이론의 성립을 가속화할 연구도 함께 진행된다. 자연계에는 중력, 전자기력, 물질의 붕괴와 관련된 약력, 그리고 핵의 구조를 설명하는 강력이라는 4가지의 힘이 존재한다. 과학자들은 태초에 우주가 시작되던 시점에서는 이 4가지 힘이 하나로 존재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대 이론물리학자들의 최대 관심은 바로 여러 힘을 하나로 통합하는 ‘만물의 법칙(TOE·theory of everything)’을 찾는 것. TOE의 유력한 후보가 바로 초끈이론이다.

초끈이론에 따르면 물질의 최소단위는 점이 아니라 고무줄과 같은 끈이다. 마치 바이올린 줄이 어떻게 진동하느냐에 따라 소리가 다르듯이 끈의 진동에 의해 다양한 입자와 힘들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들 입자는 각각의 초대칭 짝이 있다.

LHC에서 초대칭 입자가 발견된다면 이론에만 그쳐온 끈이론이 첫 번째 증거를 확보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LHC에서 엄청난 에너지로 양성자를 충돌시키면 다양한 초대칭 입자들이 생성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쿼크 간의 상호작용을 묶는 글루온의 초대칭 짝인 글루이노와 쿼크의 초대칭 짝인 초쿼크가 다량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 초대칭 입자는 우주의 23%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을 설명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 초대칭 입자 가운데 가장 가벼운 LSP는 우주 전체 에너지의 23%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의 제1후보로 꼽힌다.

고등과학원 고병원 교수는 “LHC 실험에서 초대칭 입자가 발견되면 전자기력과 약력, 강력, 중력을 포함하는 모든 힘을 하나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더 힘을 얻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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