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e TOWN]병원, 이름 하나에 ‘죽거나 살거나’

  • 입력 2008년 4월 14일 03시 00분


고리타분… 상큼… 기발… 뜨고지는 作名 변천사

국내 최초의 병원은 1885년에 개원한 ‘광혜원(廣惠院)’이다. ‘인정을 널리 베푼다’는 뜻이 담겨 있는 병원명이다. 광혜원은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의 ‘제중원(濟衆院)’으로 바뀌었고, 1904년 투자자의 이름을 딴 병원으로 변신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병원이다.

전국에 종합병원이 218개, 개인 병의원이 1만여 개가 전부였던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명동의원’, ‘○○○의원’ 등 지역이나 의사 이름, 출신 학교명을 내세운 병의원 이름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이름에는 의사의 실력이나 지역 특성 등을 앞세우려는 의도가 들어 있었다고 보인다.

최근 병원 이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서울 지역의 개인 병원은 6700개가 넘는다. 그만큼 과거에 비해 병의원의 환자 유치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의사들은 병원명을 지을 때 과거에 비해 더욱 신중해지고 있다. 마케팅의 핵심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병의원 이름은 어떻게 변해 왔을까. 또 이들 이름에 사회 변화상이 어떻게 투영되어 있을까. 무심코 보고 지나치는 병의원 이름에는 고민이 담겨 있다.

○귀엽게, 여성스럽게, 세련되게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세계화 바람이 시작됐다. 세계화 열풍은 갈수록 거세져 병의원 이름에도 반영됐다.

‘체인지클리닉’ ‘리즈산부인과’처럼 외래어, 특히 영문으로 된 이름이 등장했다. 지역이나 의사명보다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명칭을 선호하는 고객의 성향이 반영된 이름이다. ‘JM의원’처럼 영문 이니셜(첫 글자)로 된 이름도 등장했다. ‘JM’은 ‘제모’를 영문으로 쓴 ‘JeMo’의 이니셜이다. 또 의사 이름의 영문 이니셜을 쓰는 병원(‘CNP 차앤박 피부과’)도 나타났다.

특히 여성 고객이 많은 피부과(‘뽀드베베’ ‘아르데뽀’), 성형외과(‘아프로디테’ ‘신데렐라’), 산부인과(‘르메이에르’)는 귀엽거나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는 이름이 많다. 뽀드베베는 ‘뽀드득’이란 의성어와 베이비의 첫 글자의 합성어로처럼 보이나 프랑스어로 아기 피부란 뜻의 ‘Peau de bebe’에서 따온 말이다.

○브랜드병원의 등장

1990년대 들어 이른바 ‘네트워크 병원’들이 생겨났다. 같은 이름을 가진 병원들이 지역별로 생겨 전국적으로 동일한 진료와 의료서비스 제공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네트워크 병원의 출현과 함께 병의원은 기업화, 브랜드화를 지향했다.

1992년 3명의 원장이 공동 개원한 ‘예치과’가 네트워크 병원의 최초 사례. 예치과의 ‘예(Ye)’는 △모든 환자의 요구에 ‘yes’하겠다는 의지 △예술을 뜻하는 한자 ‘예(藝)’ △예의를 의미하는 한자 ‘예(禮)’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이름 속에 병원의 신조와 목표, 서비스 정신이 담겨 있다. 단순한 병원 이름이 아닌 ‘브랜드의 지향점’을 뜻하는 단어로 발전한 것. 현재 예치과의 이름이 가진 브랜드 자산 가치는 1434억 원에 달한다.

마찬가지로 ‘고운세상피부과’는 ‘고운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지향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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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름에도 규정이?

병의원 이름은 의료법에 따라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의료기관의 명칭표시는 법 제3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의료기관의 종별에 따르는 명칭 위에 고유명칭을 붙인다.’

의료법 제35조의 시행규칙 제29조 제1호의 내용이다. 종별 명칭에는 종합병원, 병원, 치과병원, 한방병원, 요양병원, 의원, 치과의원, 한의원, 조산원이 있다. 100인 이상 수용 가능한 시설을 종합병원, 30인 이상 수용 가능한 시설은 병원으로 분류한다.

이 법에 따르면 고유명칭은 의료기관의 종별 명칭과 혼동할 우려가 있거나 특정진료 과목 또는 질병이름과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 ‘손’ ‘발’처럼 전문으로 진료하는 특정 신체기관을 병의원 이름에다 직접 쓰면 안 된다는 얘기다.

이런 규정에 따라 발음을 비슷하게 하거나 특정 신체기관이 연상되는 신조어를 통해 병원 이름을 짓는 현상이 생겼다.

‘코모키이비인후과’ ‘코코모이비인후과’ ‘함문외과’ ‘속편한 내과’ ‘아이세상소아과’ 등이 그 예이다. ‘코모키’는 코, 목, 귀를, ‘코코모’는 코와 목을, ‘함문’은 항문을 연상하게 한다. 특히 ‘속편한 내과’는 배의 안 또는 위(胃)를 나타내는 ‘속’이란 단어를 활용해 ‘뱃속 혹은 위를 편안하게 해주는 병원’이란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대한네트워크병의원협회 안건영 사무총장은 “병원명의 변화는 병원이 의사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지향점이 바뀌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라며 “아무리 광고하더라도 고객의 뇌리에 또렷이 기억되지 않는 이름을 가진 병원은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순우리말-외래어 이름 28%로 껑충▼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이 물에 빠졌어요∼.”

“뭐라고? 우리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이 물에 빠졌다고?”

오래 살라고 붙여준 기다란 이름을 부르다가 아이 구할 시간을 허비해 결국 아이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는 우스갯소리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는 자식이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장수를 상징하는 단어란 단어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좋은 이름이란 부르기 쉽고 듣기 좋으며 기품이 있으면서도 쉽게 기억되는 이름이다. 병의원 이름도 마찬가지다. 딱딱하고 차갑기만 하던 병의원의 이름이 변하고 있다.

병의원 수가 급증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 4월 개정의료법 시행과 더불어 의료광고가 일부 허용되면서 환자에게 효과적으로 각인할 수 있는 이름을 짓기 위한 병의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토대로 2007년 5월 현재 서울에 있는 개인 병원(의원)의 이름 6724개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병원이 있는 지역 이름이나 의사 이름, 의사의 출신대학 이름을 사용한 병원 이름이 전체의 53.7%로 절반이 넘었다. 전통적인 이름 짓기 스타일이 여전히 강세인 셈이다.

한편 ‘고운세상 피부과’처럼 순 우리말을 이름에 사용한 병원은 15.9%였고, ‘J&K의원’ ‘더라인 체형성형클리닉’처럼 영문(이니셜 포함) 등 외래어를 이름으로 쓰는 병원은 12.3%였다. 순 우리말이나 영어를 병원 이름으로 사용하는 움직임은 최근 들어 활발해지고 있다.

이 밖에 ‘동서의원’ ‘제일의원’처럼 한자가 섞인 이름은 8.7%였다. 순 우리말이나 외래어를 기본으로 삼고 의사 이름이나 출신대학명, 병원이 있는 지역명을 조합해 지은 이름의 비율은 8.2%로 나타났다. 나머지(1.2%)는 ‘성누가의원’처럼 종교와 관련된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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