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 별장은 ‘화마 부르는 번개탄’

  • 입력 2007년 11월 2일 03시 03분


《‘슈퍼 강국’ 미국이 작은 산불에서 시작된 초대형 화마(火魔)에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달 21일(현지 시간)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시작된 크고 작은 산불은 산림 1200km², 주택 1500채를 태우며 지금도 번지고 있다. 바람을 타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산불의 불똥을 쫓느라 오늘도 미국의 소방관들은 애를 먹고 있다. 과연 불똥이 어디로 튈지 먼저 알아낼 방법은 없을까. 최근 산불의 확산과 그 이후 피해를 예측한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 ‘LA산불’ 계기로 본 속수무책 대형 산불

○ 불 확산경로 주변가옥 종류 따라 달라

미국 캘리포니아대와 프랑스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 연구소는 산불이 번지는 경로와 조건을 연구해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8월 23일자에 소개했다.

이들은 가옥 한 채와 주변 또 이에 해당하는 넓이의 풀숲을 9개 구획으로 나누고 불이 났을 때 확산 방향을 살펴봤다.

풀과 나무가 많은 숲에서 산불은 일정 방향으로 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이 이미 훑고 지나가 까맣게 타버린 곳에는 불길이 일지 않았다. 소방 장비를 갖추고 방화벽 같은 내연 처리가 된 집에서 불이 나도 주변 숲으로 번지지 않았다.

문제는 캘리포니아 주의 호화 별장 같은 목조 건물들. 여기에 불이 나자 사방팔방으로 숲이나 이웃집에 옮겨 붙었다. 한번 화재가 나면 대형 산불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캘리포니아대 마이클 질 교수는 “불은 주변 가옥의 종류와 밀집한 정도에 따라 그 규모와 확산되는 경로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연구팀은 실제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 목조 건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불이 번질 확률은 방화시설이 잘된 주택 지역보다 최고 9배 높았다.

○ ‘산불→산사태’로 확대돼

문제는 산불 피해가 숲과 가옥의 소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산사태를 낳을 수 있다.

과학계에서는 산불이 숲의 나무나 풀, 가옥뿐 아니라 땅도 함께 태운다고 알려져 있다. 불의 뜨거운 기운이 땅 아래까지 전달되면서 땅속 온도는 최고 1200도까지 올라간다.

그 결과 땅속의 수분과 유기물, 다른 성분이 타 없어지면서 흙 사이의 점도도 떨어진다. 산불 피해 지역의 흙이 푸석푸석한 것도 같은 이유다. 여기에 시간당 강우량이 수백 mm인 집중호우가 내리면 약화된 토양이 쓸려 내려갈 확률이 급격히 올라간다.

실제로 산불이 산사태의 원인이 된 사례는 여러 차례 보고됐다.

일례로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2003년 캘리포니아 남부의 수 협곡에서 발생한 산불이 두 달 후 일어난 대형 산사태와 관련이 있다고 지목했다.

2005년 4월 발생한 강원 양양군 산불 지역을 조사한 채병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산사태재해연구팀장은 “2005년과 2006년 현장 조사 때 산불의 열기가 미친 곳과 그렇지 않은 층 사이에서 물이 스며들지 않는 불투수층을 발견했다”며 “폭우가 내리면 산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2000년 산불이 일어난 강원 강릉시 일부 지역에서는 산사태 발생 확률이 11배 늘었다는 주장도 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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